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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철의 차이나는 차이나] 시진핑은 이제 마오가 되고 있다…’총서기’ 넘어 사실상 ‘당 주석’[출처: 중앙일보]

bindol 2020. 10. 26. 05:37

유상철 기자

 

유상철 - 중앙일보 기자

 

news.joins.com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그칠 줄 모르는 권력 추구는 그 끝이 어디인가. 2012년 11월 중국 공산당 총서기로 선출돼 중국의 1인자가 됐지만 8년이 지난 지금에도 시 주석의 권력 강화 행보는 쉼 없이 계속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무얼 더 얻으려는 걸까.

5중전회서 총서기 권한 대폭 강화
회의 ‘소집’은 물론 ‘의제’까지 설정
마오쩌둥 같은 ‘주석’ 위상에 근접

시진핑은 2012년 11월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돼 중국의 1인자가 됐지만 8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 권력 강화를 꾀하고 있다. [중국 신화망 캡처]

시 주석은 현재 9200만 중국 공산당의 리더인 당 총서기, 14억 중국인을 대표하는 국가주석, 중국 공산당의 무력 기반인 인민해방군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등 당, 정, 군 3권을 모두 장악하고 있다.

시 주석은 2016년엔 당의 ‘핵심(核心)’이란 칭호를 얻어 당내 권한을 대폭 확대했고, 2018년 3월엔 헌법을 수정해 두 번에 한해서 맡을 수 있는 국가주석의 임기 제한을 없앴다. 장기 집권의 문을 열었다는 평가가 잇따랐다.

시진핑의 끝없는 권력 강화.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명실상부한 중국의 1인자건만 시 주석은 26일부터 29일까지 나흘간 개최되는 제19기 중앙위원회 제5차 전체회의(5중전회)를 통해 또 한 번의 권력 강화에 나선다. 당초 5중전회의 주요 의제는 경제 관련이었다.

중국 공산당은 26일부터 29일까지 열리는 제19기 중앙위원회 제5차 전체회의에서 당 총서기 권한을 대폭 강화한 ‘중공중앙위원회 공작조례’를 심의해 통과시킬 예정이다. [중국 신화망 캡처]

1년에 약 한 번 열리는 중앙위원회 전체회의(中全會)는 1중전회의 경우 공산당에 대한 주요 인사, 2중전회는 국가기구 지도부를 확정한다. 3중전회는 경제개혁과 관련한 중대 결정, 4중전회는 당 건설, 5중전회는 경제계획을 심의하는 게 보통이다.

이번 5중전회의 주요 의제와 관련해선 지난 7월 30일 일찌감치 두 가지를 확정해 발표했다. 내년부터 5년간 시행될 제14차 국민경제사회발전 5개년 계획과 2035년까지의 발전 목표가 그것이다.

둘 다 중국의 중장기 발전 청사진을 그리는 것으로 커다란 관심을 끈다. 한데 최근엔 이것보다 이번 5중전회에서 통과될 ‘중국 공산당중앙위원회 공작조례’가 더 세간의 화제다. 왜일까? 시 주석의 권한 강화를 명문화하고 있어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의는 각별하다. 두 사람 모두 장기 집권을 꾀하고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뉴시스]

모두 8장 35조로 된 이 공작조례의 핵심은 총서기의 권한 강화에 있다. 중공 당장은 ‘중앙서기처는 정치국과 상무위원회 판사기구’로 ‘총서기는 정치국 회의와 정치국 상무위원회 회의를 소집하고, 중앙서기처 업무를 주재한다’고 돼 있다.

그러나 새로운 공작조례는 ‘중앙서기처는 정치국과 정치국 상무위원회, 총서기의 지시에 따라 업무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총서기 개인을 약 25명으로 구성되는 정치국은 물론 그 상위 기구인 정치국 상무위원회와 같은 수준에 올려놓은 것이다.

그뿐 아니다. 조례는 또 ‘정치국 및 정치국 상무위원회 회의는 총서기가 소집할 뿐 아니라 의제 역시 총서기가 확정한다’고 했다. 회의를 단순 소집하는 게 아니라 무얼 토론할지 의제도 총서기가 결정한다.

리커창 중국 총리는 권력 서열 2위이나 과거 총리처럼 경제 전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또 시진핑 주석에게 매년 업무 보고를 해야 하는 등 상하 관계가 분명해졌다. [중국 신화망 캡처]

이 같은 총서기 위상 강화는 시사하는 바 크다. 총서기의 개념이 바뀌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은 1921년 7월 창당 시 당원이 50여 명에 불과했다. 수가 많지 않았기에 3명으로 구성된 중앙국(中央局)을 만들고 그 책임자를 서기(書記)라고 불렀다.

중국의 각 당 대회 별 최고 영도자 호칭 변화.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중국 공산당이 최고 지도자를 ‘서기’라고 부른 건 서기가 당시 가장 낮은 관직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서기는 오늘의 ‘비서’에 해당한다. 낡은 사회와 결별하고 새로운 출발을 한다는 결심이 작용했다.

중국 공산당 창당의 핵심 인물 천두슈는 1921년 1차 당 대회 때 최고 지도자인 ‘서기’에 올랐다. 이후 '위원장'과 '총서기' 등으로 신분을 바꿔가며 중국 공산당 초기 시대를 이끌었다. [중국 바이두 캡처]

또 절대로 백성을 억압하는 관료가 되지 않겠다는 다짐도 있었다. 이후 조직이 커지자 여러 명의 서기를 두게 되고 그 총책임자를 ‘총서기’라고 일컫게 됐다. 그러나 1943년 마오쩌둥(毛澤東)이 정치국 및 서기처 주석이 되며 총서기는 사라진다.

그런 총서기는 1956년 마오에 의해 부활한다. 마오는 여전히 당의 최고 지도자인 주석으로 군림하면서 중앙의 일상업무를 처리하는 중앙서기처 수장으로 총서기를 두게 했다. 이때 총서기의 임무는 당 중앙의 일상업무를 수행하는 것이지 정책 결정은 아니다.

마오쩌둥은 1943년 중국 공산당의 모든 업무에 책임을 지는 정치국의 주석에 오르며 76년 사망할 때까지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다. [중국 바이두 캡처]

마오쩌둥은 중국 공산당 주석으로서 전권을 행사했고, 그 폐해는 ‘잃어버린 10년’이란 말을 듣는 문화대혁명의 비극을 낳았다. 중국의 2세대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은 ‘괴물 황제’와도 같은 마오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집단지도체제를 꾀했다.

적게는 다섯 명에서 많게는 11명으로 구성되는 정치국 상무위원회를 만들어 이들이 집단으로 토론하고 결정해 권력을 행사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수장을 총서기라 부르고 주석은 없앴다.

중국의 2세대 리더 덩샤오핑은 마오쩌둥의 1인 집권이 낳은 폐해가 다시는 반복돼선 안 된다는 생각에 5~11인으로 구성된 정치국 상무위원회가 중국을 이끌어가는 집단지도체제를 구성했다. [중국 바이두 캡처]

마오쩌둥 1인 집권의 상처가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1982년의 일이다. 이후 총서기는 중국 공산당 1인자긴 하지만 다른 정치국 상무위원과 같은 파워를 가진 것으로 간주됐다. 상무위원 중 첫 번째라는 의미의 ‘동급자 중 첫 번째(first among equals)’ 신분이었다.

 



한데 이번 새 공작조례는 총서기를 전체 정치국 상무위원회와 같은 반열에 올렸다. 다른 상무위원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인물이 아니다. 말만 총서기이지, 사실상 내용은 과거 마오와 같은 주석에 해당하는 셈이다.

2017년 중국 공산당 19차 당 대회를 앞두고 시진핑이 계속 집권을 위해 주석 제도를 회복할 것이란 소문이 파다했다. 현재 총서기 권한 강화는 3년 전의 일을 떠올리게 한다. 시 주석의 권력 강화 종착점이 결국엔 마오쩌둥과 같은 ‘종신 집권’인 것인지 관심이다.



[출처: 중앙일보] [유상철의 차이나는 차이나] 시진핑은 이제 마오가 되고 있다…’총서기’ 넘어 사실상 ‘당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