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식의 한시한수

친구의 초대[이준식의 한시 한 수]〈79〉過故人莊

bindol 2020. 10. 30. 08:16

故人具鷄黍 고인구계서
邀我至田家 요아지전가
綠樹村邊合 녹수촌변합
靑山郭外斜 청산곽외사
開軒面場圃 개헌면장포
把酒話桑麻 파주화상마
待到重陽日 대도중양일
還來就菊花 환래취국화

친구가 닭과 기장밥 마련해 놓고

시골집으로 나를 초대했네
푸른 나무들 마을 주변에 몰려 있고

푸른 산은 성 밖으로 비껴 앉았다
창문 열어 채마밭 마주한 채

술잔 들고 두런두런 농사 이야기

중양절 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와 국화꽃 감상하리라

 

―‘친구의 농가에 들르다(過故人莊)’ 맹호연(孟浩然·689∼740)

 

닭과 기장밥을 마련해 놓은 친구의 소박한 초대,

접대를 받는 마음도 그에 걸맞게 소탈하고 편안하다.

주고받는 대화도 뽕나무며 삼나무 이야기뿐.

여름 농가에 누에치기와 베짜기보다 더 긴요하면서 일상적인 얘깃거리가 또 있겠는가.

전원시의 원조 도연명도 농가의 즐거움을

“서로 만나면 딴소리하지 않고 그저 뽕나무, 삼나무 크는 얘기만 나누지”로 표현한 바 있다.

9월 9일 중양절이 되면 다시 국화꽃 보러 오겠다는 마지막 구절은 친구와

그렇게 하기로 기약한 것인지 아니면 혼자 되뇌는 다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친구집 방문에 대한 흡족감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슬쩍 내비쳤다.

정밀한 관찰이나 섬세한 감각이 돋보이는 것도,

그렇다고 심오한 삶의 성찰이 내장된 것도 아닌 이 시의 매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하루 일과를 마치 메모지에 담듯 담담하게 써내려간 데 있다.

시어든 이미지든 어느 것 하나 유별난 데 없이 수더분하고 밋밋하다.

그래서 이 시를 두고 옛 시인은 ‘너무 담백하여 도무지 시 같지 않은 시’라고도 했다.

왕유(王維)와 함께 ‘왕맹’으로 불리며 당대 산수전원시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맹호연.

그 전원시를 높이 산 이백은

“젊은 나이에 벼슬을 마다하고 흰머리로 늙을 때까지 산림에 은둔하셨지/

달에 취하고 자주 술에도 취했고 꽃에 홀려서는 임금도 섬기지 않으셨지”라 읊었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