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日家居 가을날 집에서
梅堯臣
移榻愛晴暉 이탑애청휘 걸상 옮겨 맑은 햇빛 즐기니
翛然世廬微 소연세려미 세상 걱정 스르르 사라지네
懸蟲低復上 현충저부상 거미는 줄 따라 내려왔다 올라가고
鬪雀墮還飛 투작타환비 참새는 다투듯 떨어졌다 다시 날아가고
相趁入寒竹 상진입한죽 서로 쫓듯 대나무 숲으로 가버리고
自收當晩闈 자수당만위 저녁 무렵 거미는 대문에서 줄을 거둔다.
無人知靜景 무인지정경 이 조용한 정경 아는 사람 없고
苔色照人衣 태색조인의 이끼 빛만 옷에 비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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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상을 옮겨가며 맑은 햇빛 즐기노라니
느긋하니 세상 근심 사그라지네
줄에 매달린 거미는 내려왔다 또 올라가고
다투듯이 참새들은 떨어졌다 다시 나네
서로 어울려 참새들 찬 대숲으로 들어가고
줄 거둔 거미는 저녁 대문에 붙어 있다
고즈넉한 이 정경 그 누가 알랴
이끼 풀빛만 내 옷 위로 반짝이누나
―‘어느 가을날(秋日家居)’ 매요신(梅堯臣·1002∼1060)
따사로운 햇살을 따라가며 가을의 정취에 취했던
아스라한 추억은 누구에게나 있을 법하다.
그러고 보니 대문에 거미가 줄을 친 채 오르락내리락했던 것 같고
서로 쫓고 쫓기며 참새 떼가 분잡하게 허공을 휘젓고 날았던 것도 같다.
흔한 장면이긴 해도 우리가 언제 거미와 참새의 일상이나 동작을
이처럼 유심히 챙겨본 경험이 있기나 했던가.
해가 기울고 대숲에 찬바람이 일 즈음 마침내 저들은 분주했던
하루를 마감하고 안식을 준비한다.
저녁 햇살을 받은 푸른 이끼 빛이 내 옷으로 반사되어 스르르 녹아드는 느낌,
그런 느낌에 도취되어 시인은 고즈넉한 정경에 오롯이 침잠하면서
온갖 세상 근심을 잊을 수 있었을 것이다.
시인이 거미와 참새를 등장시킨 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현실에 대한 심리적 갈등을 투영했다는 것이다.
거미와 참새의 일거수일투족이 곧 부침(浮沈)을 반복하는 인생사,
티격태격하며 무한경쟁을 이어가는 삶의 궤적을 비유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이 독법(讀法)은 왠지 장황스러워 보인다.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물아일체(物我一體)의 느긋함을 만끽하고 있는
시인의 순수성을 섣불리 희석시킬 필요는 없을 듯하다.
소박하고 과묵한 한 폭 수채화에 담긴 관조의 여유로 읽어봄 직하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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