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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프리즘] 고슴도치 사회

bindol 2020. 10. 31. 04:44

박신홍 기자

박신홍 정치에디터

 

요즘 사회가 너무 각박해졌다. 주고받는 말도 거칠어졌고 짜증과 신경질도 급격히 늘었다. 비꼬는 말투에 말끝마다 비아냥대는 친구·동료의 달라진 태도가 낯설고 당황스럽다는 글도 SNS에 종종 올라온다. 비대면 시대 집콕 생활이 일상화되고 지인들과의 모임도 크게 줄다 보니 세상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불안감이 증폭되고 그렇게 쌓인 스트레스가 송곳처럼 불쑥불쑥 튀어나오고 있다는 우려도 곁들여진다. 그뿐인가. 가계는 더욱 곤궁해졌고 자영업자들은 더 이상 버틸 힘조차 없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가 초래한 우울한 사회상의 한 단면이다.

비대면 시대 각박해진 세상에
정치권엔 독설가만 차고 넘쳐

 

실제로 최근 들어 많은 이들이 ‘코로나 블루’와 번아웃 후유증을 토로하고 있다. 삶의 보호막이 허물어지고 대인 관계마저 끊기면서 ‘여기서 낙오되면 끝장’이란 절박감에 생존을 위한 방어 본능이 극대화되고 있다는 호소다. 마치 코너에 몰린 고슴도치가 몸을 잔뜩 웅크리고 온몸의 가시를 바짝 세운 채 누구라도 접근만 하면 무조건 찔러대는 모습과 흡사하다. 마음의 여유가 바닥나자 연골 없는 무릎처럼 조그만 외부 자극에도 극심한 고통을 느끼면서 타인의 우호적 행동조차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적대적 귀인 편향’에 사로잡히게 된 셈이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단지 사적 관계의 위기에 머물지 않고 사회 전체의 갈등으로 확산되기 쉽다는 점이다. 힘든 시기일수록 정치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정치의 기본은 갈등의 조정과 해소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정치권은 어떤가. 서민들과 같이 울어주진 못할망정 오히려 갈등을 부채질하고 증오를 조장하며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는 데만 혈안이 돼 있지 않은가. 자칭 정치 평론가들은 또 어떤가. 화려한 수사로 여론을 호도하고 튀는 독설로 조회 수만 챙기며 자기는 무조건 옳고 절대 선이란 착각에 빠져 있는 자들이 차고 넘치지 않는가.

출세욕과 인정 욕망과 사리사욕에 눈이 먼 이런 정치꾼일수록 자신의 무지와 이기심은 전혀 깨닫지 못하기 마련이다. 택배 기사들이 잇따라 숨지고 자영업자들의 폐업이 속출하고 있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어떻게 해야 그들의 아픔을 덜어주고 그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지 이들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다. 사실 국민의 삶과 생명을 보호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나랏일이 또 뭐가 있단 말인가. 이념도 좋고 집권도 좋지만 국회 안에서 게임하고 막말이나 하고 있을 거면 애당초 정치에 발을 담그지 말아야 했다.

 


그렇다고 정치만 탓하고 있을 수는 없다. 전문가들도 코로나 경제 쇼크는 이제 시작이라고 하지 않나. 언제 끝날지 모를 전대미문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우리 자신부터 뾰족한 가시는 잠시 가려두고 사회적 신뢰와 연대를 지켜내는 데 힘을 모아야 할 때다. 대화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 의견을 진지하게 경청할 때 비로소 가능하며, 그렇게 사회적 합의를 이뤄나가야 정치꾼과 독설가들에게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욕하면서 닮아간다고, 이런 자들과 같은 수준으로 취급받기엔 너무 억울하지 않나.

나만 힘든 게 아니라 모두가 힘들다. 나만 외롭고 나만 스트레스받는 게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 모두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다. 그러니 이럴 때일수록 말 한마디라도 가려서 하자. 세 치 혀와 열 손가락이 말과 글로 바뀌는 순간 비수가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자. 욱하는 감정이 나를 망가뜨리지 않도록, 분노가 내게서 빠져나갈 수 있도록 마음속에 작은 문 하나쯤은 열어두고 살자. 그렇게 서로를 믿고 함께 나아가는 게 고슴도치 사회의 늪에 빠지지 않는 길이자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 맞서 우리 자신과 공동체를 지키는 길이다.

박신홍 정치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