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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세상이 그리 만만한가 Ⅱ

bindol 2020. 11. 7.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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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 기자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대기자/중앙콘텐트랩

 

‘수석침류(漱石枕流)’란 사자성어가 있다. ‘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을 베개 삼는다’는 뜻이다. 돌과 물이 바뀐 것 같은데 사연인즉슨 이렇다.

돌 양치 물 베개의 억지 부리던
손초가 울고 갈 집권당의 궤변
국민이 그 속셈 모를 거라 믿나
또 한 번의 비극 추가는 없어야

5호16국 시대 서진에 손초(孫楚)란 인물이 있었다. 문재(文才)가 뛰어났지만 도도하고 교만한 탓에 크게 쓰이지 못했다. 당시 지식인들 사이에는 죽림칠현처럼 세속의 명리를 멀리하고 맑고 고상한 이야기나 주고받으며 사는, 이른바 청담(淸談) 풍조가 유행하고 있었다. 자기애 넘치는 손초 역시 가만있지 못했다. 친구 앞에서 잔뜩 무게를 잡고 자신도 속세를 떠나 산중에 은거하겠노라며 말했다.

“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겠네(漱石枕流).”

친구가 웃으며 바로잡았다.

“흐르는 물로 양치질하고 돌로 베개를 삼겠다(枕石漱流)는 거겠지.”

분명 실언이었지만 자존심 강한 손초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며 강변했다.

“흐르는 물을 베개 삼는 건 쓸데없는 말을 들었을 때 귀를 씻기 위함이요, 돌로 양치질하는 건 이를 단련하기 위해서라네.”

손초의 이런 궤변에서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억지를 부린다’는 뜻의 ‘수석침류’ 성어가 나왔다. 1700년 전 고사가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건, 그런 억지와 궤변 또한 오늘날까지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까닭이다. 생명을 유지하는 정도가 아니라, 곳곳에서 고개를 쳐들고 난장(亂場)을 벌이고 있다. 21세기 대명천지 대한민국에서 말이다.

선데이칼럼 11/7

여당은 당헌을 고쳐가며 내년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기로 했다. 내후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다른 곳도 아닌 서울과 부산에서 후보를 내지 않기란 쉽지 않았을 터다. 아무리 대통령이 당대표 시절 만든 당헌에서 어긋난다 하더라도 그렇다.

하지만 후보를 내더라도 당 지도부가 결정을 하고, 당헌을 어긴데 대해 사과하며 비판을 달게 받아들였어야 했다. 하지만 여당은 늘 그렇듯, 사과보다는 꼼수를 택했다. 당 지도부는 쏙 빠지고 당원들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당원투표 시일도 촉박해 투표율도 26%에 그쳤다. 효력 논란이 당연히 따라붙었다.

이런 꼼수도 그들의 수석침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 당의 대표는 “후보 공천을 통해 시민의 심판을 받는 것이 책임 있는 공당의 도리”라고 주장했다. “후보를 내지 않는 것은 유권자의 선택권을 지나치게 제약할 수도 있다”고도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할 말도 아니다. 자기 당에 귀책사유가 있는 재보궐 선거에는 후보자를 내지 않는다는 대국민 약속을 하지 않았을 경우에 한해서만 맞는 말인 까닭이다. 그렇지 않고도 이 말이 맞는다면 대표 시절 당헌을 만들었던 문재인 대통령은 인기를 얻기 위해 무책임한 결정을 한 사람이 된다. 그렇다면 응당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했어야 한다.

이 당의 국회의원들이 토해내는 궤변들은 손초가 울고 갈 정도다. 한 최고위원은 “정치는 결단하고 책임지고 선거로 평가받는 것을 본질로 하는데 (무공천 당헌은) 이를 과잉금지한 것”이라고 말했다.

역시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그 말이 맞는다면 무공천을 규정한 96조 2항은 폐지돼야 했다. 그런데 ‘전 당원 투표로 달리 정할 수 있다’는 단서만 붙었을 뿐 지워지지 않았다. 유불리에 따라 적용할지 말지를 결정하겠다는 속셈 말고는 달리 해석할 방법이 없다.

압권은 그의 다음 말이다. “국민들도 사실은 시장 후보를 여야가 다 낼 것이라고 이미 알고 계신다.” 다른 최고위원이 또 말을 보탠다. “국민의힘도 같은 선택했을 것이다.” 뭐 눈엔 뭐밖에 안 보인다더니, 이것이 여당이 국민을 이해하고 대표하는 방법이라면 말 다했다.

이 당의 대변인이라는 사람은 한술 더 뜬다. “국민의힘은 (탄핵으로 인한) 조기 대선에서 국민께 일언반구도 없이 뻔뻔하게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꿔 대통령 후보를 공천했다.” 한 의원은 “오세훈 전 시장 사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발생한 선거비용 사과는 왜 하지 않냐”고 되물었다.

 


이건 아예 틀린 말들이다. 당시 지금의 야당은 무공천 약속을 한 적이 없고, 그 당이 후보를 내는 걸 누구도 문제 삼지 않았다. 게다가 현재 논란의 본질도 아니다. 집권 여당이 국민과 한 약속을 깨면서 한 마디 사과도 없이 궤변만 늘어놓고 있다는 게 본질이다. (사실 한두 번 본 장면은 아니다.)

정말 그 속셈을 국민이 모른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무 말 대잔치를 해도 국민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거라 믿는 걸까. 그렇다면 국민을 개·돼지로 생각하는 것과 다름없다. 정녕 그러고도 아무 일 없을 거라 생각하는 건가. 세상이 그리 만만한가.

손초는 온갖 폼을 잡으며 실수를 인정하지 않다가, 역사에 수치스러운 성어만 남겼다. 이 정권 역시 말로는 온갖 폼을 다 잡다가, 막상 눈앞에 이익이 있으면 스스로 비난하던 행동을 서슴없이 하는 게 습관처럼 돼버렸다. 그런 정권이 무엇을 역사에 남길까.

손초야 산중에 은둔하니 감기 들고 이가 깨져도 저 혼자 일일 뿐이다. 하지만 나랏일은 다르다. 대한민국 역사에 또 하나의 비극 추가라는 것 말고 떠오르는 게 없다. 국민만 서럽고 분하다.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대기자/중앙콘텐트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