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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 살롱] [1270] 검은 호랑이

bindol 2020. 11. 9. 05:52

조용헌 교수

 

인도의 정글에서 검은 호랑이가 사진에 찍혔다. 인도는 사자와 호랑이가 모두 서식하는 지역이다. 검은 호랑이 사진은 처음 보았다. 검은색의 흑호 사진을 보니까 호랑이에 대해 들었던 여러 가지 이야기가 생각난다.

한국은 전 국토의 조건이 호랑이가 서식하기 아주 알맞은 산악 지형이다. 그래서 호랑이는 전국의 산신각에 모셔져 있다. 할아버지 산신령이 호랑이를 타고 있는 그림이나 또는 호랑이 자체가 산신으로 대접받았다. 한국 사람들이 산에 갔을 때 두 손을 입에 댄 채로 ‘야~호’ 하고 부르는 습관이 있다. 이는 신선(산신령)이 산에서 호랑이를 타고 다니기 위하여 호랑이를 택시 부르듯이 부르는 소리이다. 신선은 도력이 있으니까 호랑이를 개 다루듯이 다루지만 일반인들에게 호랑이는 사람을 잡아먹는 무서운 맹수였다.

명리학에는 백호대살(白虎大殺)이 있다. 이 살(殺)이 팔자에 있으면 호랑이에게 잡아먹힌다는 살이다. 지금은 교통사고로 본다. 검은 호랑이보다는 흰색 호랑이가 훨씬 살생력이 강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미운 사람에게 하는 욕 가운데 하나로 ‘호랭이가 물어갈 놈’이라는 욕도 있을 정도이다. 한국의 민화 가운데 외국인들이 가장 인상적으로 꼽는 민화가 호랑이에게 담뱃불 붙여주는 토끼를 그린 장면이다. 권력자와 민초의 관계를 해학적으로 그린 장면이다.

 

안동 문화원장인 이동수(70)씨는 진성 이씨 원촌마을의 퇴계 집안이다. 언젠가 필자에게 자기 할머니가 호랑이 고기를 많이 먹어서 몸이 튼튼해지고 성격도 약간 남성적으로 변했다는 이야기를 해 준 적이 있다. 할머니는 1890년생으로 봉화읍 오록 마을에서 태어났다. 풍산 김씨 망와(忘窩·1577~1648) 선생 종가의 종녀이자 외동딸이었다. 망와 형제들은 8명이 소과에 합격하고 그중 5명이 대과에 급제해서 ‘팔연오계(八蓮五桂)’ 집안으로 불린다. 태백산 밑의 아주 깊은 산골 동네였다. 이 외동딸이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하니까 어른들이 호랑이 고기를 구해다가 자주 먹였다. 호랑이 뼛가루인 호골분(虎骨粉)도 먹였다고 한다. 이때만 해도 봉화 일대에서는 호랑이가 아주 많아서 한약재와 함께 호랑이 고기를 취급하는 가게가 있었던 모양이다. 호랑이 뼈와 고기를 많이 섭취한 이 종녀는 시집가서 아들을 낳았는데 아들 역시 통뼈로 태어났다고 한다.

전북 김제가 고향인 ‘바람의 파이터’ 최배달. 어머니가 최배달을 임신했을 때 호골분을 많이 먹었다는 이야기를 25년 전쯤 최배달 친형으로부터 들었다. 한국은 호랑이의 나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