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정민의 世說新語] [598] 후미석독(厚味腊毒)

bindol 2020. 11. 26. 05:43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남구만(南九萬·1629~1711)이 쓴 ‘숙부께 올림(上叔父)’은 숙부가 임지에서 술을 절제하지 못해 구설이 많다는 풍문을 듣고 조카가 올린 편지다. “저는 한때 조금만 쉬더라도 쌓여서 지체되는 일이 너무 많은데, 하물며 아침저녁으로 쉴 새 없이 술을 마신다면 어찌 업무가 폐하여지고 정신이 흐트러지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공적인 일은 그래도 바깥일이라 절박하지 않다 해도 밖으로 마음 끓일 일이 많은데, 안으로 석독(腊毒)의 맛만 맞이한다면 두 가지가 서로 침해할 테니 무엇으로 스스로를 보전하시렵니까? 이 조카의 생각은 만약 술 마시는 것을 자제할 수 없다면 일찍 스스로 사직하셔야 합니다.” 술잔을 들고 이 편지를 읽던 숙부는 정신이 번쩍 들었을 것이다.

글 속 석독(腊毒)의 석(腊)은 고기를 두껍게 썰어 말린 육포로 편포(便脯)라고도 한다. 두꺼워 씹는 맛이 좋지만, 잘 마르지 않아 속이 쉬 상한다. 별미지만 겉만 멀쩡하고 속이 상한 것은 맹독을 품어, 먹으면 식중독에 걸린다. ‘국어(國語)’ 주어 하(周語下)에서 “높은 지위는 사람을 엎어지게 만들고, 맛난 음식에는 석독이 들어 있다(高位寔疾顚, 厚味寔腊毒)”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권호문(權好文·1532~1587)은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知止不殆賦)’에서 “슬프다 벼슬아치들 갈 것도 잊고, 석독만 즐기니 어리석구나. 총애가 지나치면 끝내 저자에 버려지니, 상채(上蔡)에서 사냥개 끌고 뒤쫓기 어려우리(哀宦子之忘行, 嗜腊毒而蚩蚩. 寵濫而終棄東市, 上蔡之牽黃難追)”라 했다. 이식(李植·1584~1647)이 동짓날을 맞아 지은 시 ‘견우(遣遇)’에서 “무늬 좋은 표범은 함정에 들고, 미인은 질투와 모함이 많네. 맛난 음식 석독이 가득 차 있고, 큰 거리에도 깎아지른 바위 있는 법(文豹來罟穽, 佳冶多妬讒. 厚味實腊毒, 康莊或巉巖)”이라고 노래한 것도 같은 뜻이다.

‘칠극(七克)’에서는 맛난 음식이 온갖 병을 부른다는 뜻으로 ‘후미백질(厚味百疾)’을 말하며 “먼저 먹은 음식이 소화되지 않았는데 또 밥을 더 먹으면 반드시 병이 생긴다(前食未化, 又加飡焉, 必生疾矣)”고 했다. 절제를 통해 몸과 정신을 길러야겠다.



정민의 世說新語’에서 ‘편포(便脯)’의 한자를 ‘片脯’로 바로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