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이란核과 북핵은 장르가 다르다
11월 24일(현지시각)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지명자가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블링컨이 주축이 될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안보팀은 북핵 문제에 대한 리뷰 과정에 들어갔다. /AP 연합뉴스2015년 이란 핵 합의(JCPOA) 때 케리 미 국무장관은 빈 현장에서 18일에 걸친 마라톤 협상을 지휘했다. 세계에서 가장 바쁜 외교관인 미 국무장관이 워싱턴 밖 한 도시에 그렇게 장시간 머문 것은 현대 외교사에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만큼 오바마 행정부는 이란 핵 합의에 공을 들였고, 이를 최고의 외교 업적으로 내세운다. 당시 케리와 함께 이 합의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바이든 부통령, 블링컨 국무부 부장관, 설리번 부통령 안보보좌관이 내년부터 대통령, 국무장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미 대외 정책을 이끈다. 케리도 외교 전반에 대해 조언할 것이라고 한다. 바이든 행정부가 트럼프가 깨버린 이란 핵 합의를 원상 복구시키려 할 것은 예정된 수순이나 다름없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 ‘모범 사례’를 북핵 문제에도 적용할 것이라는 예상도 자연스럽다. 실제 블링컨은 “북한과의 핵 합의에 최고 모델은 이란”이라는 글을 쓴 적도 있다. 이 합의의 핵심은 ‘다자적 접근’을 통한 ‘단계적 주고받기’다. 미국은 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독일과 함께 만든 합의서에 향후 10년에 걸쳐 이란과 서방 국가들이 취해야 할 조치들을 촘촘하게 명시했다. 타결·적용·이행·전환일 등으로 구분된 단계마다 무엇을 어떻게 이행해야 하고, 이를 어떻게 확인하며, 이행하지 않았을 경우 어떤 제재가 가해지는지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이란 핵과 북핵은 ‘불량 국가의 비밀 핵 개발’이라는 겉표지만 넘기면 완전히 다른 장르다. 일단 핵 개발 단계가 다르다. 이란은 우라늄 농축 시설 등을 갖추고 있지만 핵무기 개발에는 이르지 못했다. 반면 북한은 6차례 핵실험을 통해 핵탄두 소형화 단계에 근접해있다. 완성된 핵무기를 협상으로 포기시키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게다가 이란 핵 시설은 모두 미국 정보망 안에 있지만 북의 농축 시설은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정확히 모른다. 전체 시설을 파악하지 못하면 ‘단계적 주고받기’ 그림도 그릴 수 없다. 김정은이 다 노출돼 있는 ‘영변’으로 ‘핵 포기’ 사기를 치려 한 것도 숨겨진 시설이라는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었다. 트럼프도 차마 받지 못한 카드에 바이든 팀이 눈길을 줄 리가 없다.
북의 뒷배를 봐주며 대북 공조를 무력화시키는 중국의 존재도 무시 못할 차이다. 이란 합의에도 중국이 참여했다지만, 북한과 이란이 중국에 갖는 전략적 의미는 근본부터 다르다. 또 5년 전과 달리 지금 미·중은 신(新)냉전 상태다. 이란과 달리 북은 단 한 명이 모든 결정을 하는 절대 왕정 체제이기도 하다. 이 모든 차이를 바이든 외교안보팀은 체험적으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결국 이들이 말하는 ‘북핵에 이란 모델 적용’은 원칙적·상징적 수사(修辭) 이상은 아닐 것이다. 북핵은 이란보다 몇 배 어렵고 불확실한 난제다. 많은 사람이 “오바마 행정부가 북핵을 방치했다”고 비판하지만, 북핵 문제에 관심이 없었다기보다는 갈수록 꼬이기만 하는 협상에 질렸다고 보는 게 맞는다. 바이든 시대에도 화끈한 돌파구가 열리기보다 지루한 리뷰 과정과 탐색전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란식(式) 해법’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북핵 모델’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다만 이란 모델에서 계승할 확실한 하나는 ‘강력한 제재’다. 바이든 외교팀은 ‘이란 핵 합의는 이란의 결단에서 시작됐고, 그런 결단은 국제사회의 일관된 제재 노력에서 비롯됐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 북핵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블링컨은 부장관 시절 격주마다 회의를 주재하며 세계 각국의 대북 제재 이행 상황을 직접 챙겼던 인물이다. 국내 일각의 ‘트럼프식 깜짝쇼’에 대한 미련도 그만 접을 때가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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