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전기차 화재
휴대폰, 노트북, 전기자동차 배터리는 구동 원리가 똑같다. 전기를 띤 리튬 이온이 음극과 양극 사이를 오가면서 충전과 방전이 이뤄진다. 문제는 이온을 옮겨주는 전해질 용액이 온도 변화에 매우 취약하다는 점이다. 고온에서는 액체 전해질과 전극 물질 사이에서 심각한 발열 반응이 일어나면서 온도가 급상승한다. ‘열 폭주 현상’이다. 심하면 폭발로 이어진다. 2016년 삼성 갤럭시 노트7 배터리 연쇄 발화도 열 폭주가 원인이었다.

▶테슬라 전기차의 최초 모델S가 2013년 미국 워싱턴주의 고속도로에서 불길에 휩싸였다. 지나가던 트럭에서 떨어진 금속 물체가 배터리에 충격을 주면서 불이 났다. 소방관들이 물로 화재 진압을 시도했지만, 불이 꺼졌다가 다시 점화하길 반복했다고 한다. 배터리 팩이 방화벽 안에 있어 소화액이 닿기 어렵기 때문이다. 소방관들이 차체에 구멍을 내고 배터리에 직접 물을 부어 겨우 불을 잡았다.
▶ 지난 9일 밤 서울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테슬라 전기차 모델X가 벽과 충돌하고 불길에 휩싸였다. 차 문을 열 수 없어 조수석에 타고 있던 차주가 사망했다. 목격자는 “진화 과정에서 꺼지는가 싶으면 다시 타오르길 반복했다”고 했다. 2013년 미국 화재와 같은 현상이다.
▶테슬라 전기차는 특정 지점을 누르면 손잡이가 나온다. 하지만 사고로 전기가 끊어지면서 무용지물이었다. 사고 6분 만에 소방관들이 도착했지만 끝내 문을 열지 못했다. 미국에서도 작년 2월 테슬라 모델S 화재 사고 때 외부에서 문을 열지 못해 탑승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서울에서 전기차가 불탄 날, 테슬라가 세운 스페이스X의 화성 우주선 ‘스타십’도 불길에 휩싸였다. 성층권까지 가는 비행 시험에 성공했지만 착륙 과정에서 폭발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전기차 배터리는 가솔린을 채운 차보다 에너지가 10%에 불과하고, 배터리도 방화벽 16개에 나뉘어 있어 화재 가능성이 가솔린 자동차의 1%도 안 된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홍콩대 연구진이 지난해 1월 국제 학술지 ‘화재 기술’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2018년 한 해 전 세계에서 전기차 화재 16건이 발생했는데, 그중 6건이 테슬라 전기차였다. 비용이 많이 들어 전기차로 화재 시험을 하지 않은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휘발유를 안 쓰는 전기차는 화재가 잘 나지 않으리라는 선입견은 착각인 셈이다. 테슬라는 국내에서도 젊은 층의 선망 대상이었다. 신화의 고속도로를 달려온 전기차가 중대 도전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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