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가물가물한 사람도 있을 듯해 그대로 옮겨 본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TV로 중계된 ‘2019 국민과의 대화’에서 한 발언이다. “전국적으로는 부동산 가격이 오히려 하락했을 정도로 안정화되고 있다. 과거에는 ‘미친 전월세’라고 했는데 우리 정부에서는 아주 안정돼 있다. 서울 고가 아파트 위주로 가격이 오르고 있는데, 강력한 방안을 강구해 반드시 잡겠다. 부동산 문제는 자신있다고 장담하고 싶다.”
내집 없어도 주거복지 누린다는 문 대통령의 주거 사다리 발언은 국민 눈높이 안 맞고 시장과 괴리
대통령 말대로 1년 전 안정돼 있던 부동산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대로 악화됐다면 그건 전(前) 정부 탓이 아니라 오롯이 현 정부 책임이다. DJ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일생 동안 거짓말한 적이 없다. 다만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뿐이다.” 문 대통령의 1년 전 장담은 처음부터 지키지 못할 약속을 너무 쉽게 한 게 아닌가 싶다. 문 대통령이 지난주 경기도 동탄의 공공임대주택 단지를 방문했다. 그 자리에서 오간 12평 대화가 정말 대통령이 답을 몰라서 한 순수한 ‘질문’이었는지,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의 설명에 동의를 표한 맞장구였는지는 동영상으로 쉽게 분간이 된다. 청와대 대변인이 핏대를 올릴수록 대통령에게 누가 될 뿐이다. 대통령이 강조하고 싶었던 건 서민 주거 복지와 ‘주거 사다리’였다. 문제는 대통령이 말한 사다리와 국민이 원하는 사다리가 다르다는 데 있다. 문 대통령은 “굳이 자기 집을 소유하지 않고도 임대주택이 충분히 좋은 주택으로 발전해 갈 수 있도록 주거 사다리를 만들라”고 지시했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라고도 했다. 12평에서 시작해 식구가 늘고 자녀가 성장해도 집 걱정 없이 더 큰 평수의 ‘중산층 공공임대’로 옮겨가는 사다리를 말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25번째 부동산 대책은 공공임대의 양을 늘리고 질을 높이는 데 집중될 것이며, 이를 위해 막대한 예산이 투여될 것임을 예고한 발언이었다. 정작 국민이 원하는 것은 따로 있다. 국민은 내집 마련을 우선시, 아니 절대시한다. 그게 궁극의 주거 안정이고 주거 복지다. 단칸방 월세에서 시작해 전세로 갈아타고 종잣돈을 불린 뒤 대출을 얹어 내집 마련의 꿈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모든 평범한 한국인들이 꿈꾸는 주거 사다리다. 멀리 갈 것 없이 대출로 강남 방배동에 집을 산 변창흠 후보자 본인이 꿈을 이룬 장본인이다.
아무리 공공임대주택을 업그레이드해도 국민은 쉽게 ‘내집 선망’을 꺾지 않을 것이다. 내집 마련에 관한 한 ‘발상의 전환’은 말처럼 그리 간단한 게 아니다. 내집을 선망하는 게 비난받을 일도 아니다. 모든 경제정책은 재화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행해져야 한다. 그런데 지금 국민 다수가 원하는 주거 사다리가 붕괴 일보 직전에 있다. 광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수직 상승하는 집값 때문이다. 서울 강남의 고가아파트에 이어 중저가, 수도권, 지방, 전월세 할 것 없이 모든 부동산 가격이 들끓어 올랐고, 온 국민이 피해를 보고 있다. 이런 판에 대통령의 시선은 주거 사다리의 가장 아랫부분에 꽂혀 있다. 공공임대 확대는 서민과 취약계층을 위한 보조수단은 될지언정 그것이 부동산 정책의 몸통이 될 수는 없다. 시장 전체가 아우성인데 공공임대로 해법을 찾는 건 머리가 가려운데 발 뒤꿈치를 긁는 두양소근(頭痒搔根)이나 마찬가지다. 지금 가장 시급한 일은 잠재적 공급을 옥죄며 매물조차 사라지게 만든 이중·삼중의 규제를 풀어 정상적인 시장의 힘이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공공임대주택을 방문한 것 자체를 잘못된 일이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시장에 좋은 신호를 줬다는 느낌은 안 든다. 나는 문 대통령이 공인중개사 사무실에 들러 몇 마디 대화만 나눠 봐도 온 국민의 아우성을 체감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면 왜 지지율이 계속 내리막길인지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예영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