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정민의 世說新語] [601] 관간어중 (寬簡御衆)

bindol 2020. 12. 17. 04:06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1743년 2월 30일, 영조가 보름 남짓 남은 사도세자의 관례에 내릴 훈시(訓示)의 글을 발표했다. 임금은 직접 쓴 네 개의 첩(帖)을 꺼냈다. 첫 번째 첩은 표지에 ‘훈유(訓諭)’란 두 글자를 썼는데, 안을 열자 ‘홍의입지(弘毅立志)·관간어중(寬簡御衆)·공심일시(公心一視)·임현사능(任賢使能)’이란 16자가 적혀 있었다. 넓고 굳세게 뜻을 세워, 관대함과 간소함으로 무리를 이끌며, 공변된 마음으로 한결같이 살피고, 어질고 능력 있는 이에게 일을 맡기라는 뜻이었다.

16자 아래에는 또 “충성스러움과 질박함, 문아(文雅)함이 비록 아름다워도, 충성스러움과 질박함은 투박하고 거친 데로 흐르기 쉽고, 문아함이 승하면 겉꾸밈에 빠진다. 너그러움과 인자함은 자칫 물러터져 겁 많은 데로 흐르고, 조정하고 중재하는 것은 뒤죽박죽이 되기 쉽다(忠質文雖美, 忠質流於樸野, 文勝流於表飾, 寬仁流於柔懦, 調劑流於混淪)”고 썼다.

충성스럽고 질박한 것이야 훌륭하지만 맹목적이 되면 천해진다. 문아함이 세련돼 보여도 겉만 번드르르하면 쓸데가 없다. 너그럽고 인자한 마음가짐이 소중해도 알맹이가 없으면 자칫 우습게 보이기 쉽다. 의견에 귀를 기울여 듣고 조정한다는 것이 일을 더 꼬이게 만들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임금은 다시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오늘날의 모습은 물이 맑아 고기가 없는 것과 같다. 법은 갈수록 가혹하고 세세해지니, 만약 너그러운 도리를 세자에게 가르치지 않는다면 백성이 장차 어찌 되겠는가?(今日時象, 譬如水淸而無魚. 法愈苛細, 若不以寬道敎元良, 則百姓將何所措?)”라 하였다.

처음 영조가 내린 16자 중 ‘관간어중’은 ‘상서(尙書)’ ‘우서(虞書) 대우모(大禹謨)’ 중 “임금의 덕에는 잘못됨이 없다. 간소함으로 아랫사람을 대하시고, 관대함으로 사람들을 이끄신다(帝德罔愆, 臨下以簡, 御衆以寬)”고 한 데서 따왔다. 법을 집행하던 위치에 있었던 고요(皐陶)가 순(舜) 임금을 찬양해서 기린 말이다. 위에서 임금이 너그럽고 간소한 인정(仁政)을 베푸니, 백성들은 가혹한 세금의 고민이나 압박이 없어 상하가 화목하고 나라가 안정되어 편안하다는 뜻이다. 지금은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