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정민의 世說新語] [602] 인약발병 (因藥發病)

bindol 2020. 12. 24. 04:28


1625년 9월 12일, 인조가 구언(求言)의 하교를 내렸다. 광해의 난정을 바로잡아 나라의 새 기틀을 세우겠다던 다짐은 3년 만에 왕의 좁은 도량과 우유부단한 언행으로 허물어지고 있었다. 왕은 점차 바른말을 듣지 않고 제 고집만 부리고, 희로를 안색에 바로 드러냈다. 보다 못한 김상헌의 구언 건의가 있었다.

임금은 부덕한 몸으로 하늘의 노여움을 만나 백성의 걱정하는 소리가 시끄럽고, 원망하는 한숨이 끊이지 않아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큰 신의를 버리고 작은 일만 살피는 사이에 하는 일마다 마땅함에 어긋나니, 그 죄가 내게 있다며, 신하들에게 바른말을 구하였다.

 

계곡(谿谷) 장유(張維·1587~1638)가 ‘구언응지소(求言應旨疏)’에서 포문을 열었다. 그는 무엇보다, ‘임금의 마음이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格君心之非)’며, 이를 위한 처방으로 입지(立志)와 회량(恢量), 평심(平心)을 꼽았다. 뜻을 확고히 세우고, 도량의 품을 넓히며, 마음을 공평하게 지닐 것을 주문했다.

특별히 그는 임금의 좁은 도량에 대한 불만을 가감 없이 말했다. “급기야 근래에는, 어떤 일에 대해 말하면 마땅한지 아닌지는 따지지도 않고, 문득 나도 다 알고 있다는 식으로 대하시는가 하면, 혹은 기뻐하면서도 그 뜻은 따져 보지 않으시며, 따른다면서도 고치지 않으십니다.(及至近日, 凡言事者, 無論當否, 輒以訑訑之色待之. 或悅而不繹, 或從而不改.)” 그러다가 대신이 이에 대해 간언하면 외방으로 좌천시키거나 유배를 보내 버렸다.

 

그가 다시 말했다. “신이 가만히 전하를 살피건대, 굽은 것을 바로잡으려다 곧음이 지나쳐서, 약으로 인해 오히려 병이 생기는 문제가 있는 듯합니다. 대개 미워함이 너무 심하기 때문에, 이로 인해 지나치게 의심함이 있고, 너무 급하게 끊어버리려다가 그 본뜻을 찬찬히 살피지 못합니다.(臣竊闚聖明似有矯枉過直, 因藥發病之累. 蓋其惡之也太甚, 故因而有所過疑焉. 絶之也太急, 故不暇察其本情焉.)” 마음에 안 맞으면 그르다고 하고, 뜻을 거스르면 바로 내친다. 약을 준다면서 병만 안겨주니, 그 결과 아첨과 허위가 기승을 부리고, 성실하고 정직한 말은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