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87.항로(航路)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2015. 1. 21. 17:33
늘 안개가 끼는 중국 동남부 저장성 항저우의 시후(西湖) 전경.
이곳 지명이 '물길을 건너다'의 航(항)이라는 글자와 관련이 있다.
먼 길을 나서는 일, 예나 지금이나 쉽지만은 않다. 비행기와 기차, 자동차 등 문명의 이기가 발달한 요즘에도 낯설고 물 설은 먼 외지로 길을 떠나는 일은 고생의 연속이다. 교통의 편의성이 지금보다는 아주 떨어졌던 옛 사람들의 먼 여정이야 새삼 이를 게 없다.
뭍길보다는 물길이 더 어려웠을 수 있다. 높은 산, 깊은 계곡이 놓여 있는 뭍길에 비해 물길은 배가 있으면 다니기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마땅한 교통수단을 갖추지 못했을 경우 깊은 물길을 건너는 일은 목숨을 걸어야 했을지 모른다.
물 건너는 일에 관해서는 도섭(徒涉)이라는 단어가 있고, 도섭(渡涉)이라는 말도 보인다. 앞의 徒涉(도섭)은 맨몸으로 물을 건너는 행위, 뒤의 도섭(渡涉)은 그냥 건너는 행위 자체를 일컫는 말이다. 발섭(跋涉)이라는 말도 있다. 앞의 跋(발)은 걸음을 옮기는 행위를 가리키는 글자다. 특히 산을 넘는 일에 쓰는 글자다.
발산섭수(跋山涉水)라는 성어 표현이 곧잘 등장하는데, ‘산을 넘고 물 건너’의 뜻이다. 속뜻은 온갖 험난한 여정을 거친다는 의미다. 여러 가지 일을 많이 거친 사람의 경우를 섭력(涉歷)이라고 적는데, 뭍길에 비해 더 험난했을 물길 건너기(涉)가 들어 있음에 주목하면 좋다.
항로(航路)라는 말은 요즘의 우리가 자주 쓰는 말이다. 보통은 비행기가 움직이는 길을 가리킨다. 그러나 운항(運航)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航(항)이라는 글자는 비행기에만 국한할 수 없다. 원래는 ‘물길 건너는 배’라는 뜻의 글자다.
중국의 지명에 杭州(항주)가 있다. 현지 발음은 항저우다. 이 땅이름 첫 글자인 杭(항)이 우리가 많이 쓰는 航(항)이라는 글자의 원래 형태다. 명사의 의미로 사용하면 물을 건너는 배, 동사의 뜻으로는 ‘물길을 건너다’의 의미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秦始皇)도 이곳에 들렀던 모양이다. 그가 이 지역의 커다란 강을 건너려다가 사나운 물길 때문에 주저했단다. 그러다가 지금의 杭州(항주) 인근에서 무사히 강을 건너 ‘물 건넌 땅’이라는 뜻의 현재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동남부에서 경제가 가장 발달한 곳인 저장(浙江)성의 도회지다.
杭(항)의 쓰임은 줄어들고, 그를 대체한 글자가 航(항)이다.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인 한(漢)나라 무렵이라고 한다. 이때에 이미 바닷길을 움직인다는 뜻의 항해(航海)라는 단어가 등장했다는 설명이 있다. 물길을 건너는 배라는 뜻의 航船(항선)이라는 단어도 그 무렵에 나타났다고 한다.
‘땅콩 회항 사건’을 이제 법정에서 다투고 있다. 피고의 변호인 측이 문제의 비행기가 17m 이동한 경우를 ‘항로 변경’이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 ‘항로’는 비행기가 공중에서 움직이는 길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행정적으로 그 ‘항로’라는 단어를 어떻게 규정할지는 몰라도 원래 단어의 뜻에는 맞지 않는다.
물길, 뭍길, 하늘 길을 포함해 교통수단이 목적지를 향해 움직이는 과정 모두를 포함하는 말이 ‘항로’라고 봐야 한다. 비행기가 다니는 공중의 길을 굳이 적자면 항공로(航空路)가 맞다. 항로는 그런 항공로를 포함하는 모든 여정이다.
따라서 출발을 위해 비행기 문을 닫고 움직이는 순간부터 ‘항로’에 들어간다. 말뜻으로 보면 그렇다는 얘긴데, 여론의 들끓는 험한 바다를 헤쳐가야 하는 대한항공의 변호인 측이 어째 방향을 잘못 잡았다는 느낌을 준다. 그래 가지고서야 먼 길을 제대로 갈 수 있을까.
<한자 풀이>
涉 (건널 섭, 피 흐르는 모양 첩): 건너다. 지나다, 거치다. 겪다. 거닐다. (걸어서)돌아다니다. (길을)떠나다. 이르다, 미치다. 간섭하다, 관계하다. 섭렵하다. 넓다. 나루.
跋 (밟을 발): 밟다, 짓밟다. 넘어가다. 난폭하다, 사납다. 되돌리다. 촛불이 다 타다. 밑동, 타다 남은 부분. 발문(跋文).
杭 (건널 항): 물을 건너다. 막다. 고을 이름. 배, 나룻배.
航 (배 항): 배, 선박. 방주, 배다리. 건너다, 항해하다. 날다.
<중국어&성어>
跋山涉水 bá shān shè shuǐ :산을 넘고 물을 건너다. 험난한 여정, 어려웠던 과정을 거치는 경우다. 자주 쓰는 성어다.
翻山越岭(嶺) fān shān yuè lǐng: 험준한 산과 산맥을 넘는다는 얘기. 위의 성어와 속뜻은 같다.
一苇(葦)可航 yī wěi kě háng: 갈대, 또는 작은 거룻배를 가리키는 글자가 葦(위). 작은 배로도 건널(航) 수 있는(可)곳을 가리키는 성어다. 2차적인 뜻은 ‘조그만 힘으로도 해결할 수 있는 사안’.
출처: https://hanjoong.tistory.com/entry/한자-그물로-중국어-잡기-87항로航路?category=662101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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