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봉의 漢詩 이야기

꿈속의 사랑

bindol 2021. 1. 1. 07:16

김태봉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사랑은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이면서 동시에 고통이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언제나 함께 지낼 수 있다면,

더 말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인생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람마다 이별의 사정은 다르겠지만,

분명한 것 하나는 이별이 좋아서 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런저런 부득이한 사정으로 헤어져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리운 마음이 깊어지기 마련이다.

특히 깊은 정이 든 부부나 연인들 사이에 흔히 있는

상사(相思)의 정은 자칫 병이 되기도 한다.

이 상사병(相思病)에 걸리면 곧잘 꿈속에서 그리운 사람을 만나곤 한다.


조선(朝鮮)의 시인 황진이도 예외가 아니었다.

 

 

 

상사몽(相思夢)


相思相見只憑夢 (상사상견지빙몽) : 그리워하다 마주 보는 건 단지 꿈속 뿐인데
儂訪歡時歡訪儂 (농방환시환방농) : 내가 님을 찾아갈 때 마침 님도 날 찾아 떠나고 없네
願使遙遙他夜夢 (원사요요타야몽) : 바라거니 멀리서 다른 날 밤 꿈을 꾸어

一時同作路中逢 (일시동작로중봉) : 길에서나마 같은 때 만나주게 하소서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다면 아무런 걱정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이 있다.

보고 싶은 생각은 간절한데 현실적으로 볼 방도는 없고 할 때,

꿈속에서나마 볼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지금 시인의 처지가 딱 그러하다.

그런데 꿈속이라고 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공교롭게도 상대방도 똑 같은 생각을 하여, 같은 시각에 꿈을 꾸었고,

서로를 만나기 위해 상대방을 찾아 떠났기 때문에 막상 가보니

양쪽 다 상대를 만날 수 없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만나지 못하는 비극적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처리한

시인의 재치가 돋보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가볍게 처리하면서도 두 사람의 사랑이 얼마나 애틋한지

그 모습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솜씨는 참으로 탁월하다.

꿈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에 실패한 시인은 실망하지 않고 더 기발한 제안을 한다.

 

두 사람이 따로 꿈을 꾸어 못 만난 것이니 다음번에는

같은 시각에 꿈을 꾸기 시작해 역시 같은 시각에 서로를 만나러 떠나자고 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면 서로 가다가 도중에 만날 수 있을 테니까.

비극을 유머로 승화시키는 시인의 풍류의식이 돋보인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보고 싶어도 만나지 못하는 게 세상사이다.

보고 싶기는 한데 현실적으로 방법이 없을 때 요긴한 게 바로 꿈속의 만남이다.

얼마나 간절히 바랐으면 꿈에 다 나타날까만,

꿈속에서나마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러나 꿈이라는 게 마음대로 꾸어지는 게 아니다.

꿈을 꾼다고 해도 한 사람만 꾸어서도 안 된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동시에 꿈을 꾸어야 꿈속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이니,

이 또한 어렵기 그지없다. 그렇다 해도 두 사람이 만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으니,

누구나 꿈속의 사랑을 꿈꾸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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