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희의 新유대인 이야기]

[홍익희의 新유대인 이야기] [1] “티쿤 올람”… 유대인의 믿음, 팬데믹마다 백신 열매 맺었다

bindol 2021. 1. 20. 06:11

[홍익희의 新유대인 이야기] [1] “티쿤 올람”… 유대인의 믿음, 팬데믹마다 백신 열매 맺었다

코로나 백신 만든 유대인

홍익희 전 세종대 교수

 

‘의학원리집’을 집필한 중세 최고 랍비 마이모니데스를 비롯해 유대인들은 의학에 헌신해온 긴 역사를 갖고 있다. 하루 최소 9번 손을 씻는 종교적 습관, 음식 정결법 ‘코셔’ 등 위생 관리에도 철저했다. 중세 베네치아에서 페스트로 인구 3분의 1이 사망할 때 유독 유대인 희생자가 적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작자 미상의 18세기 그림 ‘전염병 피해자들을 방문하는 키지 추기경’. 이탈리아 로마 바르베리니 궁전 국립 고전 미술관 소장. /게티이미지코리아

화이자와 모더나의 mRNA(메신저 RNA) 백신 탄생에는 연구원 카탈린 카리코의 외롭고도 힘든 40년 헌신이 있었다. 그는 1976년 헝가리 대학에서 생명과학 강의를 듣다 mRNA 세계에 빠졌다. 분자생물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1984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템플대에서 mRNA 연구에 몰두했지만 성과가 나오지 않아 쫓겨났다. 다행히 1989년부터 펜실베이니아대 의대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그의 연구 이론은 이렇다. 사람의 DNA에는 생명 구성 요소인 단백질을 만드는 방식이 들어 있다. 단백질 설계도 격인 DNA 유전 정보를 단백질을 만드는 리보솜까지 갖고 오는 전령이 mRNA이다. mRNA는 DNA의 메시지를 풀이해 단백질을 생산하도록 하는 생명체 소프트웨어이다. 그는 이를 활용하면 특정 단백질의 결핍이 원인인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보았다. 특히 폐에 생기는 유해한 점액을 제거하는 기능성 단백질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요청한 연구 자금 지원은 번번이 거부당했다. 대학 측은 mRNA 연구의 현실성이 희박하다고 보고 카리코에게 퇴직이나 직위 강등 중 하나를 택하도록 했다. 더구나 1995년 당시 그는 암 투병 중이었다.

1997년 면역학의 대가인 유대인 드루 와이즈만 교수가 부임했다. 카리코는 와이즈만 교수에게 “저는 어떤 RNA도 만들 수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와이즈만 교수는 카리코 연구의 중요성을 즉시 알아보았다. 자신의 연구 자금을 쪼개 그를 지원했다. 이는 ‘와이즈만-카리코 프로젝트’로 이어져 코로나19 백신 연구로 연결되었다. 어려움도 있었다. mRNA 주사는 심각한 염증 반응을 일으켰다. 그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 연구를 거듭해 2004년 이를 극복했다. 그들은 세포 안으로 mRNA 정보를 집어넣는 기술을 특허 냈다. 화이자 백신은 카리코가 현재 부사장으로 있는 독일 ‘바이오엔테크’ 사와 공동 개발한 것이다.

코로나19 백신 개발 주역 대부분이 유대인이다. 화이자 CEO 앨버트 불라와 백신개발팀을 이끈 미카엘 돌스텐이 유대인이다. 스웨덴 출신 돌스텐은 이스라엘 와이즈만 연구소에서 1년 유학하면서 삶의 방향이 바뀌었다. 원래 그는 의사였지만, 이스라엘에서 최첨단 면역학을 배운 뒤 신약 개발 쪽으로 돌아섰다. 의사로서 환자를 보살피는 임상도 중요하지만 인류를 위해서는 면역학 연구가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카리코와 와이즈만의 연구를 주목한 사람이 또 있었다. 스탠퍼드대 연구원 데릭 로시는 그들의 연구 논문을 읽고 mRNA에 관심을 가졌다. 2010년 그는 하버드와 MIT 교수들과 함께 변형 mRNA를 이용한 백신을 개발하고자 모더나(Moderna)를 설립했다. 모더나의 최고 의료 책임자 탈 작스 역시 이스라엘 벤구리온 대학 출신 유대인이다.

유대인들이 의학에 헌신한 역사는 오래되었다. 중세 랍비 중에는 의사와 무역상이 많았다. 당시 랍비들은 생활비를 스스로 벌어야 했다. 중세 최고 랍비 마이모니데스도 ‘의학 원리집’을 집필한 의사이자 이집트 술탄의 주치의였다. 1492년 스페인 왕국이 유대인을 추방할 당시 스페인 의사 대부분이 유대인이었다. 유대인 의사가 이렇게 많았던 것은 ‘티쿤 올람(Tikun Olam)’ 사상 때문이었다. 티쿤 올람이란 ‘세계를 고친다’는 뜻이다. 이 사상에 따르면, 하느님은 세상을 창조하셨으되 완벽하게 창조한 것이 아니라 지금도 창조 사업을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창조론과 진화론을 아우르는 사상이다. 인간은 하느님의 파트너로 세상을 개선해 완전하게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다는 의미다. 유대인들은 인간의 병든 몸을 고치는 것도 티쿤 올람이라 생각한다. 유대인의 13세 성인식 때 랍비와 하는 문답이 있다. “네 삶의 목적이 무엇이냐?” “티쿤 올람에 기여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유대인들의 기도처인 예루살렘 올드 시티 ‘통곡의 벽’ 인근에서 손을 씻는 정통파 유대인들. /사진가 보르하 가르시아 데 솔라 페르난데스

1347년 베네치아에 페스트가 창궐해 인구의 3분의 1이 사망했으나 유대인 희생자는 유독 적었다. 그 비결은 철저한 손 씻기와 청결 의식에 있었다. 유대교는 거룩한 장소에 임할 때는 반드시 손을 씻으라고 명한다. 그래야 죽음을 면할 수 있다고 성서에 기록되어 있다(출 30:20~21). 유대인들은 가정을 가장 중요한 성소로 여긴다. 외출하고 집에 돌아오면 반드시 손을 씻어야 했다. 하느님이 임재하신다고 믿는 식탁에 앉기 전에도 손을 씻어야 한다. 그들은 씻지 않은 손으로 만진 음식이 사람을 부정하게 만든다고 믿었기 때문에 한번 씻을 때 3회 이상 철저히 씻었다. 그들은 하루에 3번 기도할 때도 정결한 컵에 물을 담아 오른손과 왼손을 번갈아 4번 이상 씻었다. 일종의 정결 의식이다. 유대인들은 하루에 최소 아홉 번 손을 씻는다. 또한 ‘코셔(Kosher)’라는 음식 정결법을 지켜 위생 관리에 철저했다.

 

현대 면역학을 개척한 두 유대인 거장이 있다. 대식 세포를 발견한 프랑스의 엘리 메치니코프와 매독 치료제를 개발한 독일의 파울 에를리히다. 메치니코프가 이끄는 프랑스 의학계와 에를리히가 이끄는 독일 의학계는 면역계 실체를 두고 오랜 기간 논쟁을 벌였다. 결국 두 진영의 면역 이론이 모두 옳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1908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메치니코프와 에를리히가 공동 수상했다. 이들 덕분에 유대인들의 백신 개발이 잇달아 수백만 명의 목숨을 구했다. 프랑스에서는 유대인 발데마르 하프킨이 콜레라 백신을 만들었고, 미국에서는 유대인 조나스 솔크가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21세기 들어 바이오 산업을 전략 산업으로 지정해 거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유대인이 면역학에 강한 이유이다.

'코로나 백신'에 공헌한 사람들. 왼쪽부터 드류 와이즈만 전 펜실베이니아대 의대 교수, 카탈린 카리코 ‘바이오엔테크’ 부사장, 알버트 불라 ‘화이자’ CEO, 미카엘 돌스텐 ‘화이자’ 최고 과학 책임자(CSO), 탈 작스 ‘모더나’ 최고 의료책임자(CMO).

코로나19 백신은 크게 세 가지다. 미국과 독일의 ‘mRNA’ 방식, 영국과 러시아의 ‘바이러스 전달체 방식’, 중국의 ‘불활성화’ 방식이 있다. 이 중 mRNA 백신은 바이러스 병원체를 주입하는 게 아니라 바이러스의 일부 단백질을 인체 스스로가 만들어내도록 하는 유전자(mRNA)를 투입하는 방식이다. 우리 몸은 이에 대항하여 항체를 만든다. 바이러스를 증식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리는 전통 방식 백신은 일반적으로 개발에 10년 이상 걸리지만 시험관에서 mRNA만 합성하면 되는 백신은 생산 속도가 놀라우리만큼 빨라 팬데믹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이런 유형의 백신 개발 자체가 노벨 의학상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기술이 가져올 미래이다. mRNA 백신 기술을 토대로, 원하는 기능성 단백질을 만들어 암과 유전병을 이겨낼 날도 멀지 않다.

우리나라 의료진과 의료 시스템, 의료 보험은 세계적으로도 우수한 편이다. 특히 의대는 수재들이 몰리는 곳이다. 그런데 의학 연구나 신약 개발에 헌신하는 의사는 소수다. 우리나라도 의사들이 의학 연구와 신약 개발, 의공학 분야에 뛰어들 수 있는 여건 마련이 절실하다. 꿈과 열정이 있는 젊은 의사들이 관련 창업에 과감히 뛰어들어 의학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이루어내길 바란다. 이는 ‘티쿤 올람’ 사상 못지않은 우리의 홍익인간 이념을 구현하는 길이기도 하다.

[왜 유대인을 알아야 하나]

역사에 촘촘히 박힌 그들의 경제 파급력… 단점은 반면교사로

유대인만큼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민족도 없다. 장단점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역사의 굽이굽이에서 세계 경제는 유대인 덕분에 발전할 수 있었다. 근대 초 네덜란드에서 중상주의의 꽃을 피워 세계 곳곳에 무역 네트워크를 건설한 주역이 유대인이었다. 당시 투자가 세계적으로 뻗어나갈 수 있었던 힘은 그들이 채권 시장을 활성화해 연 15%인 시중 금리를 2~3%대로 끌어내렸기 때문이다. 영국의 산업혁명이 세계로 전파될 수 있었던 것도 유대인의 자본력 덕분이었다.

기초 학문과 정밀 과학 분야의 세계 최고 연구 기관으로 손꼽히는 이스라엘 와이즈만 연구소. /퓨처런닷컴

유대인의 단점 또한 명확하다. 팔레스타인 문제, 미국의 금권 정치, 금융 자본주의의 본질적 문제인 소득 불평등과 빈부 격차의 중심에 그들이 있다. 단점은 반면교사로 삼고 그들의 장점을 배워야 한다. 우리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면 제조업을 뛰어넘어 유대인이 주도하는 금융 산업 등 서비스 산업에서 결판을 보아야 한다. 유대인을 알아야 할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