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석 사회에디터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의 중국 현대사를 홍(紅)·전(專) 전환의 역사로 보는 시각이 있다. 홍은 사상과 이념이 득세하던 시기를, 전은 실용주의를 앞세운 전문가들이 힘을 얻은 시기를 말한다. 전자는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이, 후자는 백화제방이나 류사오치(劉少奇)의 실용주의 개혁이 대표한다. 홍·전의 경쟁은 1978년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 선언 이후 전의 최종 승리로, ‘역사의 종말’을 맞은 듯 보였다.
하지만 최근 잊혔던 홍이 부활하는 국면을 맞고 있다. 요직이 전문성보다 시진핑(習近平) 주석 개인과 ‘시진핑 사상’에 대한 충성심의 정도에 따라 배분되는 경향이 있다는 얘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초기 대응이 엉망이었던 것도 이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news.joins.com/article/23702973)
씁쓸한 건 이게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 역시 전문성보다 이념 위주의 인사를 단행했다가 뒤탈을 낳은 경우가 적지 않았다. 나라 살림을 해 본 적 없던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겁 없이 ‘소득주도성장’ 실험에 나섰다가 경제에 큰 부담을 안겼다. 원자력이 주전공이었던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탈원전 이외 사안에 대한 식견 부족을 수시로 노출했다. 법무부에 잡음 그칠 날이 없는 것도 세 장관이 모두 검찰 조직에 대한 이해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외부 출신이라는 점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특히 이런 ‘미꾸라지 인사’의 배경에는 근본적으로 기득권 세력이기도 한 전문가 집단에 대한 불신이 깔린듯해 우려를 키운다.
정부는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도 전문가 집단인 대한의사협회의 ‘중국인 입국 금지’ 권고를 여섯 차례나 거부했다. 그렇다고 정부 내 전문가 집단인 질병관리본부에 전권을 부여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는 사이 코로나19 확진 환자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의료 문외한이면서 보건의료 책임자 지위에 있는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실언을 남발했다가 국민적 분노와 사퇴 요구에 직면했다.
정부는 전문가에 대한 인식을 원점에서 새롭게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공무원은 국민에 대해 책임을 진다’고 명시한 헌법을 준수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박진석 사회에디터
[출처: 중앙일보] [분수대]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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