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수 스포츠팀장
사마천의 『사기』 ‘열전’ 권86은 다섯 인물 이야기다. ▶비수를 들고 제환공을 위협한 조말(曹沫), ▶생선 뱃속에 숨긴 비수로 오왕 요를 죽인 전제(專諸), ▶주군 지백의 복수를 위해 두 차례나 조양자를 습격한 예양(豫讓), ▶엄중자를 위해 한나라 재상 협루를 살해한 섭정(聶政), ▶연나라를 위해 진시황 암살을 시도하다 실패한 형가(荊軻) 등이다. 공통점은 누군가를 위해 다른 누군가를 죽이거나 죽이려 한 점이다. 권86의 제목은 ‘자객열전’(刺客列傳)이다.
자객은 사람을 몰래 죽이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다. 사마천도 책 제목에 붙일 만큼 유구한 역사의 단어가 4·15총선 길목에 등장했다. 이른바 ‘자객 공천’에서다. 더불어민주당이 19일 고민정 전 청와대 대변인을 서울 광진을에 전략공천했다. 미래통합당 소속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겨냥한 거라고 한다. 통합당은 23일 서울 구로을에 3선의 김용태 의원을 전략공천했다. 이곳 출마가 유력한 민주당 소속 윤건영 전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을 노린 거라고 한다. 이 밖에도 많은 ‘자객’ 이름이 오르내린다.
선거에 ‘자객’을 처음 끌어들인 이는 자민당 소속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전 일본 총리다. 2005년 9월 제44회 중의원선거에서다. 그는 당시 자신이 추진한 우정 민영화에 반대한 같은 당 의원 선거구에 ‘자객’ 후보를 내보냈다. 당의 내분으로 선거에서 패할 거라는 전망은 빗나갔다. 자민당 의석은 선거 전보다 84석 늘었다. 일본에서 효과를 본 ‘자객’ 공천은 대한해협을 건넜다. 사실 한국에도 그 전부터 ‘표적 공천’, ‘저격수 공천’ 등 비슷한 게 있었다. 이번 선거에서는 아예 일본 직수입 명칭인 ‘자객’ 공천이 널리 쓰인다.
사마천은 ‘자객열전’ 말미에 “조말부터 형가까지 다섯 사람은(自曹沫至荊軻五人), 그 뜻을 이루기도 하고 이루지 못하기도 했지만(此其義或成或不成), 그 뜻을 세우는 게 분명했고(然其立意較然), 그 뜻을 속이지 않았으니(不欺其志), 이름을 후세에까지 드리우는 게(名垂後世). 어찌 망령된 일이겠는가(豈妄也哉)”라고 적었다. ‘자객’은 뜻을 이룰 수도, 이루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도 뜻을 세우는 건 분명해야 하고, 속이지 않아야 한다. 총선 ‘자객’들께선 자신도 그러한지 살피시라. 그래야 이름을 후대에 전해도 망령되지 않을 테니.
장혜수 스포츠팀장
[출처: 중앙일보] [분수대] 자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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