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옥 복지행정팀장
신약성서의 마지막 장인 ‘요한묵시록(요한계시록)’에는 심판의 날에 신을 대신해 인간의 죄를 벌하는 ‘네 명의 기사(騎士)’가 등장한다. 질병의 백기사와 전쟁의 적기사, 기근의 흑기사, 죽음의 청기사다. 세상의 종말을 가져오는 불행한 사건을 상징한다.
역사학자인 발터 샤이델은 『불평등의 역사』에서 이에 빗댄 ‘평준화의 네 기사’를 명명했다. 대중을 동원한 전쟁과 변혁적 혁명, 국가 붕괴(혹은 실패), 치명적인 전염병이다.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고 소득과 부의 분배를 압박해, 경제적 불평등과 빈부 격차를 좁힌 격렬한 충격을 이렇게 부른 것이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평준화는 이처럼 강력한 충격으로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빈부를 가리지 않는 바이러스의 무자비함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간극을 줄였다. 특히 중세 유럽을 강타했던 흑사병(페스트)이 대표적이다. 인구의 30% 이상이 목숨을 잃으며, 귀족 가문 4분의 3이 상속자를 잃고 귀족 계급은 극적으로 줄었다. 인구 감소에 따른 노동력 부족에 따른 노동자의 임금 상승으로 경제적 불균형은 완화됐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돌아오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평준화의 기사는 아닌 듯하다. 경제적 약자를 한계선상으로 몰아넣고, 사회 계층의 단층선을 드러내고 있어서다. 뉴욕타임스가 “코로나19가 빈부 간 격차와 계층을 나누고 있다며 ‘신(新) 카스트 제도’가 생겨났다”고 지적할 정도다. ‘코로나 카스트’다.
코로나 카스트 속 ‘목구멍이 포도청’인 이들은 감염의 위험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일자리로 돌아가고 싶다”며 자택 대피령으로 인한 봉쇄 조치 장기화에 항의하는 시위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지난 4주 동안 미국에서 2200만 명이 실업수당을 신청하고, 노동자 8명 중 1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한국의 상황도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다. 지난 17일 발표된 ‘3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취업자는 19만5000명 줄었다. 2009년 5월 이후 최대치다. 임시근로자도 42만명 감소했다. 일시 휴직자는 126만명 급증했다. 1983년 통계 작성 이후 최대 규모다. 무급 휴직이 늘고 노인 일자리가 연기된 영향이다.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밥벌이의 고단함이 경제적 약자를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
하현옥 복지행정팀장
[출처: 중앙일보] [분수대] 코로나 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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