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수 스포츠팀장
당구에는 일본어 용어가 많다. 내기 당구, 특히 두 명씩 두 팀으로 칠 때 흔히 ‘겐페이’라고 한다. 겐페이의 ‘겐’은 ‘근원 원’(源), ‘헤이’는 ‘평평할 평’(平)이다(‘겐’ 뒤의 ‘헤이’는 ‘페이’로 발음한다). 헤이안(平安) 시대 말기인 1180년, 일본의 양대 무사 일족인 겐지(源氏)와 헤이지(平氏) 간에 내전이 벌어졌다. 겐페이 합전(源平合戰)이다. 전쟁을 주도한 양측 대표 가문이 미나모토(겐지)와 타이라(헤이지)라서 ‘미나모토-타이라 전쟁’이라고도 한다. 1185년까지 이어진 전쟁에서 겐지가 이겼다. 미나모토 가문은 헤이지 정권을 무너뜨리고, 1192년 일본 최초의 무사정권인 가마쿠라 막부(鎌倉幕府)를 세웠다. 전쟁 당시 겐지는 흰색, 헤이지는 붉은색 깃발을 사용했다. 일본에서 팀을 둘로 나눠 대결을 펼치면 거의 홍팀과 백팀으로 나눈다. 홍백전의 유래다.
일본이 홍백전이라면, 한국은 청백전이다. 초등학교 시절 운동회를 돌이켜 보자. 청팀이나 백팀 한쪽이 ‘해가 떠도 최고~, 달이 떠도 최고~’라고 외치면, 다른 한쪽이 ‘아니야~, 아니야~’로 맞받았다. 왜 청백전일까. 유력한 설은 일본강점기 일본에서 전해진 홍백전을 해방 후 왜색 척결 차원에서 청백전으로 바꿨다는 것이다. 이때 오방(五方)색 중 동쪽과 서쪽을 각각 상징하는 푸른색과 흰색을 채용해 청백전이 됐다고 한다(붉은색은 남쪽을 상징한다). 일본강점기 전까지 한국에서는 팀을 둘로 나눌 때 보통 좌군, 우군으로 했다. 이때도 상징색은 오방색에서 가져와 푸른색(좌군)과 흰색(우군)을 썼다.
2020시즌 프로야구 개막일은 원래 지난달 28일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기약 없이 미뤄졌다. 구단들은 하릴없이 자체 평가전만 하고 있다. 이때도 청백전이다(물론 일본 프로야구는 홍백전이다). 지난 주말, 여러 스포츠 채널이 청백전을 중계했다. 전에 볼 수 없었던 장면이다. 모처럼의 야구 경기가 반가웠다. 하지만 같은 편끼리 하는 청백전이라, 신이 나거나 응원할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프로야구는 다음 주(21일) 시범경기를 시작한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다음 달 초 개막을 조심스레 검토 중이다. 부디 그리되길 빈다. 야구 등 스포츠만이 아니라, 평범해서 소중한지 몰랐던 우리의 모든 일상이 그립다.
장혜수 스포츠팀장
[출처: 중앙일보] [분수대] 청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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