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분수대] 이밥에 고깃국[출처: 중앙일보]

bindol 2021. 2. 3. 15:32

권혁주 논설위원

 

조선 시대 소고기는 얼마나 귀한 음식이었을까. 생각보다 흔했다는 연구가 있다. 생태환경사학자 김동진(53) 박사의 연구다. 근거는 숙종 2년(1675년) 정월의 『승정원일기』 등이다. ‘도성의 시전에서 고을의 시장, 거리의 가게, 혼인 잔치를 위해 모인 곳에 이르기까지 모두 합해 하루에 (소를) 죽이는 것이 1000여 마리 이하로 내려가지 않고….’

 


김 박사는 이를 바탕으로 당시 1인당 연간 소고기 소비량을 추산했다. ‘매일 1000마리를 잡으면 한 해 36만5000마리다. 설·단오·추석·동지에는 2만~3만 마리씩 도축했으니 최소 연간 40만 마리가 된다. 당시 소는 지금보다 작았다. 몸무게를 요즘 한우(600~700㎏)의 절반가량인 300㎏으로 추정하면 마리당 고기는 150㎏이 나온다. 40만 마리 전체 고기 양은 6000만㎏. 숙종 때 인구가 약 1500만 명이니 1인당 연간 소고기 4㎏을 먹었다. 한국의 1980년대 중반 소비량과 맞먹는다.’ 왕실과 세도가에서만 흥청망청 소고기를 먹었던 것도 아닌 듯하다. ‘(백성들이) 손님을 대접하거나 먹기 위해 끊임없이 소를 잡았다’는 기록도 있다(『조선, 소고기 맛에 빠지다』·김동진 지음).

쌀은 어떨까. 조선 후기 서양 선교사들은 커다란 그릇에 고봉으로 퍼 올린 쌀밥을 보고 ‘먹는 양에 놀랐다’는 내용의 기록을 남겼다. 김 박사는 이런 점들을 통해 결론지었다. “극심한 흉년을 빼면 쌀밥과 고깃국은 귀한 음식이 아니었다.” 그랬던 ‘쌀밥에 고깃국’은 일제 강점기의 식량 수탈로 말미암아 이상향의 대명사가 됐다. 62년 김일성 당시 북한 수상이 내건 유토피아의 모습도 “모두 이밥(쌀밥)에 고깃국을 먹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57년이 지났건만, 북한에서 ‘이밥에 고깃국’은 요원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최근 ‘제2차 전국 당 초급선전일꾼대회’에서 “전체 인민이 흰쌀밥에 고깃국을 먹으며 비단옷을 입고 좋은 집에서 살게 하려는 것은 수령님(김일성)과 장군님(김정일)의 평생 염원”이라고 했다. 과연 김정은은 염원을 이룰 수 있을까. 해법은 베트남에서 보고 왔다. 베트남은 벼농사 2·3모작이 가능한데도 한때 식량을 수입했다. 집단농장의 비효율 때문이었다. 이를 극복한 건 ‘도이머이(쇄신)’라는 개혁·개방 정책을 통해서였다. 80년대 후반에는 식량 수출국으로 변모했다. 이런 모습을 비롯해 확 바뀐 베트남 경제를 현장에서 목도한 김정은이다. 그가 ‘흰쌀밥에 고깃국’이라는 염원을 이루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하다.

권혁주 논설위원

[출처: 중앙일보] [분수대] 이밥에 고깃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