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차현진의 돈과 세상] [5] 실패가 낳은 美 연준

bindol 2021. 2. 4. 04:51

차현진 한국은행 연구조정역

입력 2021.02.04 03:00

20세기 초 악명 높은 사업자이자 투기꾼이었던 찰스 와이먼 모스(가운데·1856~1933)의 1910~1915년 무렵 사진. 뉴욕의 얼음 공급을 독점해 큰돈을 번 뒤 해운사들을 인수하며 사업을 확장했고, '유나이티드 구리' 회사 주식 사재기로 1907년 대공황을 일으킨 원인 제공자 중 한 사람이다. /미 의회도서관·베인뉴스서비스

공자는 “귤이 회수를 넘어 북쪽에 가면 탱자가 된다(橘化爲枳)”고 말했다. 그런데 그 반대 현상이 벌어졌다. 대규모 코로나 감염 사태를 겪은 서울 동부구치소에서 확진받은 미결수 100여 명을 경북 청송으로 옮겼더니 음성으로 나왔다. 바이러스 입장에선, 북쪽의 귤이 남쪽에서 탱자가 된 것일까.

어떤 진단 결과는 역사를 바꾼다. 15년 형을 받고 복역하던 미국 재벌 찰스 모스의 경우가 그랬다. 그는 교도소 안에서 신장염에 걸려 석 달 안에 죽는다는 진단을 받았다. 모스는 그 진단서를 언론에 뿌려 동정 여론을 조성했다. 그리고 대통령의 사면을 유도했다. 수감된 지 2년밖에 안 되어 절대 사면할 수 없다던 태프트 대통령도 비서실장의 성화에 결국 자기 뜻을 굽혔다.

웬걸! 교도소를 나온 모스는 멀쩡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군납으로 떼돈을 벌면서 태프트 대통령보다도 3년을 더 살다 죽었다. 모스는 남의 피와 소변으로 의사들을 철저히 속였다. 물론 뇌물도 엄청 뿌렸다. 비서실장까지 뇌물을 먹었다는 것을 알고, 퇴임한 태프트가 땅을 쳤다.

 

모스는 교도소 동창 루포와 폰지에게 영감을 심어주었다. 아그나시오 루포는 ‘늑대’라는 별명을 가진, 조폭들의 조폭이었다. 30년 형을 받아 복역하던 그는 훗날 모스와 같은 수법으로 애틀랜타교도소를 빠져나와 잔혹한 범죄를 이어갔다. 잡범에 불과했던 찰스 폰지는 모스를 통해 금융 사기에 눈을 떴다. 그리고 그 분야에서 전설이 되었다.

모스가 교도소에 간 이유는, 자기 소유 은행 돈을 횡령해서 주가를 조작했기 때문이다. 조작은 실패하고, 은행은 파산했다. 그리고 금융 공황이 닥쳤다(1907년). 한 사람의 농간으로도 경제가 쉽게 망가지는 것이 확인되자 뒷수습이 시작되었다. 중앙은행 즉, 미 연준(Fed)을 세운 것이다. 전화위복이었다.

무릇 사고는 뒷수습이 중요하다. 동부구치소 사태의 원인을 잘 연구하면, 우리 감염병 관리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할 수도 있다. 전화위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