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2/6始(시)는 의미를 나타내는 女(녀)와 소리를 나타내는 台(이)로 구성된 글자다.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허신의 설문해자에서는 始의 본래 뜻을 ‘여자아이가 처음 태어난 것(女之初也)’으로 풀이했다. 고대사회에서 여자아이가 태어나 성장해 어른이 되면 출산과 양육을 통해 인류 재생산과 계승이라는 책임을 짊어지게 된다. 그러한 측면을 고려해 본다면 한자 始가 뜻하는 ‘시작’이란 기존에 존재하던 것의 ‘재생산’과 ‘발전적 계승’을 내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울러 始에는 ‘근원’이라는 의미가 있는데 元(원)·原(원)·本(본) 등과 어울려 원시·시원·본시와 같은 단어를 만든다. ‘시작’은 반대 의미인 ‘끝’과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다. 성경에서 유래하는 ‘알파와 오메가’라는 표현처럼 시작과 끝을 각각 대표하는 문자를 묶어서 일의 전체를 아울러 지칭하기도 한다. 한자어에서도 始末(시말)이라는 단어는 개개의 글자만 떼어 보면 단순히 시작과 끝일 뿐이지만, 이 두 글자가 하나의 단어로 묶여 ‘시작과 끝 사이의 모든 전개·과정’이라는 의미를 형성하는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史記)』 ‘상군열전’에는 “백성들은 시작(始)을 더불어 의논할 수는 없으나 다 이뤄진(成) 후에는 함께 누릴 수 있다(民不可與慮始 而可與樂成)”라는 구절이 있다. 전국시대 진(秦)나라의 정치가였던 상앙이 자신의 변법이 지니는 정당성을 주장하는 과정에서 밝힌 소신이다. 그가 말하는 ‘시작’(始)이란 ‘결과’(成)와 상반되는 ‘과정’을 뜻한다고 해석해 볼 수 있다. 어리석은 민중과는 정책의 ‘결과’로서 돌아오는 복리는 함께 누릴 수 있되 그것의 ‘시작’과 ‘과정’을 함께 의논할 상대가 아니라는 언설(言說)이다. 이 말은 오늘날 시민사회의 구성원 입장에서 한편으로는 불편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달콤할 수도 있다.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우리가 구성원의 적극적인 참여와 견제를 통한 의사결정 구조의 이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겠고, 달콤함을 느끼는 것은 그러한 구조 안에서 구성원이 짊어져야 할 부담과 번거로움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시작’과 ‘과정’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곧 민주주의적 구조의 ‘재생산’과 발전적 ‘계승’으로 이어지리라는 것 또한 우리는 알고 있다. 미증유의 감염병 확산이라는 전 인류적 위기 속에서도 우리는 어떻게 재생산하고 발전적으로 계승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이어 나가야 할 것이다. 신웅철 경성대학교 한국한자연구소 HK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