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世說新語] [610] 부유의상(蜉蝣衣裳)
일년 중 눈이 가장 많이 내린다는 대설(大雪) 절기를 하루 앞둔 6일 오후 경남 창원시 주남저수지에서 겨울철새 재두루미(천연기념물 제203호) 한 무리가 노을이 지는 하늘을 날고 있다./뉴시스
성호(星湖) 이익(李瀷·1681~1763)의 ‘차운(次韻)’ 4수 중 제3수다. “산에 기댄 낡은 집이 바로 나의 고향인데, 꽃나무로 이웃 삼은 침상이 편안하다. 곤경 처해 형통하니 길 얻었음 알겠고, 삶 기뻐함 미혹 아니니 어긋난 길 부끄럽네. 저물녘 노는 하루살이 의상이 화려하고, 맑은 날에 나는 황새 편 날개가 길구나. 작고 큰 것 살펴보매 성품 각기 정해지니, 몇 사람이나 휘파람 불며 높은 산에 있을는지. (依山廢宅卽吾鄕, 花木爲鄰穩著牀. 處困猶亨知得路, 悅生非惑恥乖方. 蜉蝣晩戲衣裳麗, 鸛鶴晴飛翅翮長. 細大看看各定性, 幾人孤嘯在崇岡.)”
나이가 들어도 좀체 자기 삶에 대한 확신은 드는 법이 없다. 이게 맞나 싶다가도 금세 의심이 나서 쭈뼛댄다. 그래서 선생의 이 같은 수졸(守拙)의 태도에서 학문의 깊은 내공이 느껴진다. 산자락의 낡은 집에서 꽃나무를 이웃 삼아 산다. 꿈도 없이 잠이 편안하다. ‘장자'는 ‘제물론(齊物論)’에서 “삶을 기뻐함이 미혹됨이 아닐지 그대가 어찌 알겠는가?(予惡乎知說生之非惑邪?)”라고 했다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곤경에 처해서도[處困] 생을 기뻐[悅生]하니, 삶이 제 궤도를 얻어 미혹됨이 없다. 낫게 살겠다고 삐뚠 길을 기웃대는 것이 부끄럽다.
제 삶이 끝나가는 저물녘에 하루살이는 제 고운 의상을 뽐내며 논다. 전 같으면 어리석다고 비웃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는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함이 아니라, 보석 같은 시간을 즐기고 있다. 시원스레 날개 뻗은 관학의 비상은 그것대로 시원스러워 눈이 고맙다. 사물은 저마다 타고난 성품에 따라 삶을 영위해 간다. 크고 작고, 넉넉하고 부족한 것을 따지지 않는다. 내 가난한 삶은 편안한 잠 앞에서 안온하다. 나는 저 높은 산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며 홀로 부는 휘파람에 기쁘다.
부유(蜉蝣), 즉 하루살이는 조긍섭(曺兢燮·1873~1933)이 ‘잡지(雜識)’에서 “내가 일찍이 잡아서 살펴보니, 그 깃이 정말 눈처럼 희고, 밝고 깨끗해 사랑스러웠다(予甞捕而觀之, 其羽正白如雪, 明潔可愛)”고 묘사했던 팅커벨이다. ‘시경'에도 ‘부유' 시가 있다. 세상 사람들이 작은 즐거움을 탐하여 먼 염려에 어두운 것을 탄식한 시로 알려져 있다. 내게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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