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5] 풍요를 기원하는… 보름달 아래 참나무

bindol 2021. 2. 26. 05:35

[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5] 풍요를 기원하는… 보름달 아래 참나무

김두량, ‘월야산수도(月夜山水圖)’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입력 2021.02.26 03:00 | 수정 2021.02.26 03:00

 

 

김두량 ‘월야산수도’(1744), 종이에 수묵담채, 81.8x48.8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오늘은 정월대보름, 한 해 농사의 풍요를 기리는 우리의 대표적인 세시 명절이다. 월야산수도(月夜山水圖)는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잎 진 숲속의 나무들을 비추고 있다. 힘차게 물이 흐르는 개울을 사이에 두고 화면의 가운데서 약간 비켜서서는 잎을 모두 떨어뜨려버린 고목나무 한 그루가 우뚝 솟아있다. 아래서 위까지 가지 뻗음에 방해를 받지 않아 원뿔형의 아름다운 모양을 만들었다. 나무 밑동에는 거의 옆으로 자라는 또 한 그루의 큰 나무가 어우러져, 쓰러지지 않게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다.

그림을 확대해 보면 두 나무의 아래쪽에는 불규칙하게 작은 마른 잎사귀들이 그려져 있다. 단풍이 지고도 한참 지난 계절인데 아직도 미련이 남았는지 마른 단풍잎이 띄엄띄엄 매달린 것을 찾을 수 있다. 바로 겨울 참나무를 구별해 내는 중요한 특징이다. 줄기나 가지 뻗음의 모양새도 모두 참나무에서만 볼 수 있다. 참나무는 가을이 깊어가면서 차츰 겨울바람을 맞아 단풍잎이 떨어져 나가지만 겨울 늦게까지, 때로는 새잎이 나기 직전까지도 잎의 일부가 나무에 달려 있다. 태곳적 참나무 선조들은 고향이 더운 지방이며 상록수로 살다가 온대 지방에 옮겨오면서 낙엽수가 되었다. 아직도 선조들의 유전 인자를 일부 간직하고 있어서 단풍잎을 금방 떨어뜨려버리지 못한다고 한다.

그림 왼쪽 위의 화제(畫題)에는 ‘갑자년(1744) 중추에 김두량이 그렸다’고 적혀 있다. 중추(仲秋)는 가을이 한창인 음력 8월을 말하며 그림에 보름달이 떠 있으니 추석날 밤을 그렸다는 뜻이 된다. 과연 추석날의 그림인가? 그러나 이 그림의 풍광은 추석날이 아니다. 추석이라면 양력으로 9월 말에서 10월 초이다. 이 시기에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대부분의 활엽수는 아직 단풍이 들지 않아 거의 여름 풍광을 그대로 유지한다. 단풍이 들고 모든 나무가 벌거숭이가 되는 시기는 적어도 12월은 지나야 한다. 그림에서 또 주목할 부분은 흐르는 물의 양이 엄청 많은 것이다. 동장군이 물러가면서 높은 산에 쌓였던 눈이 녹아내리기 시작하는 초봄이라야 이런 풍광이 나온다. 또 개울 건너편 참나무 숲에는 안개가 아련히 나무 허리에 걸려있고 비슷한 모습의 나무들이 옅은 수묵 처리되어 있다. 역시 추석 풍광은 아니다. 월야산수도의 계절은 봄기운이 아련히 찾아오는 초봄으로 짐작된다. 그림 속의 달을 음력 1월 15일 대보름달로 상정하면 실제 풍광과 거의 맞아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