歎時
시대를 한탄한다
形獸心人多古聖 형수심인다고성
形人心獸盡今賢 형인심수진금현
擾擾東華冠帶士 요요동화관대사
暮天風雨奈君恩 모천풍우내군은
생김새는 짐승이나 마음은 사람다운 자는
먼 옛날 성인 가운데 많고
생김새는 사람다우나 마음은 짐승인 자는
오늘날 현자가 다 여기에 속한다
서울 길을 왁자하게 헤치고 가는
의관이 화려한 분들이여
비바람 몰아치는 저문 하늘의
임금님 은혜는 어찌 하는가
―서기(1523~1591)
조선 선조 때 충청도 공주에 살던 서기(徐起)란 학자가 경구처럼 쓴 시다.
그는 양반집 종이었으나 학문이 뛰어나 존경받던 특이한 사람이다.
가 서울 거리를 기세 좋게 헤치고 다니는 고관들을 향해 쓴소리를 내뱉었다.
나라를 책임진 그들은 생김새도 의관도 화려하여 부러움을 살 만한
외형을 갖추었으나 정작 마음은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다.
먼 옛날 복희씨니 신농씨니 하는 성인들은 뱀이나 소 형상을 했으나
인간에게 수렵과 농사를 가르쳤다.
반면에 잘나고 행세하는 지금의 지도자는 외형은 훌륭하나 마음은 짐승이다.
고금(古今)의 인물이 지닌 가치가 확연히 다르다.
그런데 서기는 부도덕하고 무능한 지배층의 행태가
불러올 위기를 깊이 느낀 것일까.
비바람 몰아치는 저문 하늘에서 임진왜란의 파란이 밀려오는 느낌이다.
안대회·성균관대 교수·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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