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동대문을 나서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입력 2016.02.13 03:00
동대문을 나서다
잔설이 옷자락에 헤적일 때에
매화 찾아 시골집을 나와 봤더니
땔나무를 소등에 실어 나르고
막걸리에 청어 안주 내어놓았군.
저 멀리 절에서는 연기 오르고
깊은 계곡엔 적설이 남아 있구나.
훗날에 은퇴하면 어떻게 할까?
선친께서 장만해놓은 전답이 있지.
出東郭
殘雪明衣上(잔설명의상) 尋梅到野居(심매도야거)
谷薪輪赤犢(곡신윤적독) 村酒佐靑魚(촌주좌청어)
遠寺孤烟直(원사고연직) 深溪積雪餘(심계적설여)
東岡他日計(동강타일계) 先子有田廬(선자유전려)
19세기 초 한양에서 아전으로 살았던 녹문(鹿門) 김진항(金鎭恒)이 지었다. 겨울 끝이라 날씨도 풀려 매화를 본다는 구실로 시골집을 찾았다. 동대문을 나서보니 잔설이 드문드문 남아 있다. 동네는 산골짜기에서 나무를 해서 소등에 실어 오고, 시골집은 막걸리를 내어놓는데 안주가 청어구이다. 시골티가 그대로 묻어난다. 주변을 둘러보니 산 중턱 절에서는 밥 짓는 연기가 한 줄기 피어오르고, 계곡 깊은 데에는 여전히 눈이 쌓여 있다. 전원이라 철도 늦다. 불쑥 나이 들어 은퇴하면 어떻게 남은 인생을 준비할까 생각해본다. 다행히도 선친이 어렵게 장만해놓은 집과 전답이 있다. 그가 전원을 보는 여유로움에는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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