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대회·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아들 손자와 함께
높디높은 나무에서 가지 살랑 흔들흔들
어디선가 작은 새가 날아왔다 알려주네.
후다닥! 물고기도 개구리도 뒤질세라 풀에 숨더니
왜 아닐까? 물총새가 연못을 엿보고 있네.
광경이 새로워서 시로 짓기 오묘하지만
애잔하여 들여다보며 지팡이에 기대서려니
그 틈에 또 노랑나비 쌍쌍이 펄펄 날아오는
이 한때의 기이한 일 약속이라도 했나 보다.
同韻兒與孫(동운아여손)
高高庭樹乍搖枝(고고정수사요지)
幽鳥飛걐自可知(유조비래자가지)
쮖爾魚蛙爭匿草(숙이어와쟁닉초)
果然翡翠下窺池(과연비취하규지)
景光新出模詩妙(경광신출모시묘)
情悲詳看倚杖遲(정비상간의장지)
卽又雙飜金翅蝶(즉우쌍번금시접)
一時奇事겭相期(일시기사약상기)
—이규상(李奎象·1727~1799)
18세기 명사들의 인물평을 잘했던 학자 이규상이 지은 시다. 어느 날 아들 손자와 함께 집에서 본 풍경을 기이하다고 감탄하여 썼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기이할까? 얼핏 보면 언제나 뜰을 지키고 서있는 나무의 가지 하나가 흔들거리고 그 뒤에 일어난 소소한 장면일 뿐이다. 새가 나타난 낌새를 채고 물고기와 개구리가 풀 속으로 숨어든다. 아니나 다를까 물총새란 놈이 연못을 노려보고 있다. 고요하고도 지루한 한낮의 일상을 깨트리는 작은 소란에 시인의 마음이 설렌다. 그 설렘이 가라앉을 찰나 황금빛 날개 펄럭이며 나비가 쌍쌍이 날아든다. 무감각해진 시인을 놀라게 하려고 약속이라도 한 듯하다. 할아버지의 감각이 손자보다 예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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