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옛사랑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옛사랑
아무리 임이 그리워도
창자 끊어질 일은 절대 없어요.
만약 그랬다면
제 창자는 한 치도 남아나지 않았겠죠.
올해도 어김없이
강가에는 배꽃이 피었네요.
빈 창문에 기대 서서
석양빛을 하염없이 홀로 봅니다.
—유희(柳僖.1773~1837)
古閨怨(고규원)
相思定不斷人腸(상사정부단인장)
苟斷儂無一寸長(구단농무일촌장)
每歲梨花江上宅(매세이화강상택)
獨憑虛牖眄斜陽(독빙허유면사양)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한글 음운(音韻) 연구서 '언문지(諺文誌)'의 저자인 서파(西陂) 유희가 옛날풍으로 사랑을 읊었다. 처음부터 따지듯이 말한다. 미칠 듯이 사랑하고 사무치게 그리워하면 창자가 끊어져서 '단장(斷腸)의 슬픔'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하지만 틀리는 말이다.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왜냐고? 내가 겪어봐서 잘 안다. 내 창자는 아직 멀쩡하다. 사랑 탓에 창자가 끊어졌다면 내 창자는 남아있을 리가 없다. 그 지독한 그리움은 한두 해가 아니다. 올해도 또 봄이 돌아오고 배꽃이 핀다. 나는 홀로 또 석양빛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다. 석양처럼 내 청춘도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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