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김장
안대회·성균관대 교수· 한문학
김장 蓄菜(축채)
시월이라 바람 세고 새벽 서리 매서워져
울 안팎의 온갖 채소 다 거둬 들여놓네.
김장을 맛나게 담가 겨울나기 대비해야
진수성찬 아니라도 하루하루 찬을 대지.
암만 봐도 겨우살이는 쓸쓸하기 짝이 없고
늙은 뒤로는 유난스레 감회에 깊이 젖네.
이제부터 먹고 마실 일 얼마나 남았으랴
한 백 년 세월은 유수처럼 바쁜 것을.
十月風高肅曉霜(시월풍고숙효상)
園中蔬菜盡收藏(원중소채진수장)
須將旨蓄禦冬乏(수장지축어동핍)
未有珍羞供日嘗(미유진수공일상)
寒事自憐牢落甚(한사자련뇌락심)
殘年偏覺感懷長(잔년편각감회장)
從今飮啄焉能久(종금음탁언능구)
百歲光陰逝水忙(백세광음서수망)
―권근(權近·1352~1409)
고려 말·조선 초의 저명한 학자인 권근이 음력 10월에 김장을 하고 나서 지었다. 늦가을이 훌쩍 다가오자 채소를 거둬 겨울을 날 채비를 서두른다. 말리거나 절여서 겨울 내내 먹을 음식을 장만하고 보니 안도감과 함께 이제는 한 해도 저물었다는 느낌이 엄습해온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김장을 하는 연중(年中)행사도 무심히 지나갈 수가 없다.
김장은 여느 음식 장만과는 다르게 인생의 무게를 담은 듯하다. 600년이 흐른 지금도 이 한시에 담긴 감상이 아니라고 할 수 없는 묵직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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