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가슴으로 읽는 한시] 천연의 살림살이

bindol 2021. 3. 15. 04:42

[가슴으로 읽는 한시] 천연의 살림살이

안대회·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천연의 살림살이

담쟁이넝쿨로 옷 해 입고 난초로 띠를 매면 어울릴까?
개울가의 나무 밑에 가지 엮어 살고 싶다.
섬돌 덮은 파초 잎은 부치기 쉬운 부채이고
길을 덮은 이끼는 넓게 깐 보료겠네.
낚싯대 잡고 비를 뚫고 가면 그게 바로 지팡이요
바위에 걸터앉아 계곡물 내려보면 방석이 따로 없다.
봉선화를 비벼 짜고 갈대 붓에 즙을 적셔
오동잎을 주어다가 은사(隱士)의 노래 지어내리.

―정학연(丁學淵·1783~1859)



天然具(천연구)

蘿衣蕙帶稱如何(나의혜대칭여하)
因樹爲居在澗阿(인수위거재간아)
砌覆芭蕉搖扇易(체복파초요선이)
徑添苔蘚鋪氍多(경첨태선포구다)
把竿衝雨當扶老(파간충우당부로)
據石臨泉是養和(거석임천시양화)
挼碎鳳仙沾荻筆(뇌쇄봉선첨적필)
拾將梧葉寫隱歌(습장오엽사은가)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의 아들인 정학연은 빼어난 시인이자 의사였다. 그는 어느 날 의식주 모든 것을 자연에 있는 그대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옷과 띠는 넝쿨이나 난초를 걸치고, 집은 따로 짓지 않는다. 부채고 담요고 지팡이고 장터에서 사오지 않는다. 시도 먹물이나 종이를 쓰지 않고 봉선화 즙에 갈대 붓으로 오동잎에 쓴다. 그렇게 살면 어떨까? 태초의 원시적 삶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걸까? 삶 자체가 자연친화적이었던 시절에 그것마저도 인위적이라 여겨 원시의 삶을 동경하였다. 지금 우리는 천연구(天然具)를 상상할 수조차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