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한시

[가슴으로 읽는 한시] 관악산 꽃 무더기 (冠峀花層·관수화층)

bindol 2021. 3. 15. 05:01

[가슴으로 읽는 한시] 관악산 꽃 무더기 (冠峀花層·관수화층)

안대회·성균관대 교수·한문학

 

 

관악산 꽃 무더기 (冠峀花層·관수화층)

躑躅花爭發 척촉화쟁발
朝曦又照之 조희우조지
滿山紅一色 만산홍일색
靑處也還奇 청처야환기
得意山花姸 득의산화연
簇簇繞峨嵯 족족요아차
莫愁春已暮 막수춘이모
霜葉紅更多 상엽홍갱다

 

앞다퉈 핀 철쭉꽃 위로
아침 햇살 내려 쪼인다
온 산 가득 붉은빛이라
파란 데가 외려 멋지다
제철 만난 산꽃은 어여쁘게
한 무더기 또 한 무더기 꼭대기까지 에둘렀다
봄이 저물까 걱정일랑 아예 말게나
단풍 들면 붉은 빛이 더 퍼질 테니

 

—신경준(1712~1781)

 

 

1760년 봄에 철쭉이 만발했다. 실학자 신경준(申景濬)이 한강 북쪽에 위치한 첨학정(瞻鶴亭)에 앉아 관악산을 바라보니 철쭉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온 산은 벌겋게 불이 난 듯했다. 보는 이를 압도하는 붉은 철쭉! 그런데 붉은색 일색이라 그런지 군데군데 파란 빛깔로 보이는 곳이 꽃보다도 사랑스럽다. 제철 만나 산을 뒤덮은 철쭉도 철 지나면 사라질까. 천만에. 그런 반전(反轉)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여름 지나 가을이 되면 단풍은 더 붉게 산을 태우리라.

 

이 시는 관악산을 붉게 물들인 철쭉꽃 찬미가가 분명하다. 그런데 그 붉은색 관악산을 본 시인의 눈에 권력을 독점한 당파의 전횡이 오버랩됐다. 붉고 푸른 빛깔은 당파의 색목(色目)이다. 시인은 푸른 빛깔의 소수당 소속이라, 자기 연민에 사로잡힌다. 계절이 바뀌면 달라질까. 천만에. 단풍이 산을 뒤덮듯 주도권을 쥔 세력은 때가 되면 다시 모습을 나타낸다. 봄날의 붉은 꽃에도 정치는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