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20] ‘과학적’이라는 착각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인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학교 정치학과 교수가 지난 2012년 여름 서울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특별 강연을 하고 있다. /오종찬 기자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는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미국의 지난 80년을 둘로 나눴다. 전반 40년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이기고, 높은 경제성장을 이루고, 인종차별을 없앴으며, 빈부 격차를 축소했다. 반면 후반 40년은 경제성장과 노동자 임금 상승이 정체되고, 불평등은 심화되고, 상상도 못 한 금융 위기가 터지고, 재정은 악화되었다. 그 분기점은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취임이다.
우울한 후반 40년을 지배해 온 원리는 신자유주의다. 시장의 힘이 세상을 잘 돌아가게 만든다는 믿음이다. 그 믿음은 부익부 빈익빈을 넘어 ‘공정하다는 착각’까지 일으켰다는 것이 마이클 샌델의 지적이다. 신자유주의의 출발은 부자 감세의 낙수 효과를 노린 레이거노믹스다. 그 덕에 더 부자가 된 사람들은 그것이 자기 능력 때문이라며 우쭐하고 가난해진 사람은 자기 탓으로 알고 괴로워한다. 그 착각과 악순환을 바로잡고자 바이든 대통령이 최근 낙수 효과에 대해 사망 선고를 내렸다. 40년 만의 대반전이다.
41년 전 오늘 레이건이 조지 부시를 누르고 공화당 대선 후보로 확정됐다. 그의 대선 캠프로 모인 참모들은 모든 규제 철폐는 미덕이라고 확신했다. 대통령경제자문위원회(CEA) 의장이 된 머리 바이덴바움은 직원들에게 “거기 그냥 멍청히 서 있지만 말고 아무 규제든 하나 골라잡아 철폐시켜 봐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금융 규제를 계속 완화하다 보니 화폐(통화)와 화폐가 아닌 것의 경계가 흐릿해졌다. 그러면서 통화량 관리도 의미를 잃었다. 결국 1992년 통화량 관리가 중단되었다.
경계가 흐릿한 개념은 지속될 수 없다. 그런데 가상 자산 투자자들은 그것이 화폐인지, 아닌지조차 구분하지 않는다. 자신의 투자가 과학적이라고 자부할 뿐이다. 그것은 ‘과학적이라는 착각’이다. 과학이란, 경계가 흐릿한 것들을 끊임없이 나눈다는 뜻[分科]이다. 마이클 샌델이 80년을 둘로 나눈 것처럼.
'차현진의 돈과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차현진의 돈과 세상] [22] 죽어서 산 남자 (0) | 2021.06.03 |
---|---|
[차현진의 돈과 세상] [21] 혈맹, 전맹, 물맹 (0) | 2021.05.27 |
[차현진의 돈과 세상] [19] 축의금은 돈이 아니다 (0) | 2021.05.13 |
[차현진의 돈과 세상] [18] 관치 금융은 벨기에산 (0) | 2021.05.06 |
[차현진의 돈과 세상] [17] 씨날코를 아십니까 (0) | 2021.04.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