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世說新語] [626] 불삼숙상 (不三宿桑)
이상호 시인의 새 시집 ‘국수로 수국 꽃 피우기’를 읽다가 ‘감나무의 물관을 자르시다’에서 마음이 멈췄다. “가을에 감을 따내신 우리 아버지 / 감나무에 더는 물이 오르지 않게/ 밑동에 뱅 둘러 물관을 자르셨다.// 더는 감나무에 오르지 못하겠다고/ 목줄을 끊기로 작정하셨던가 보다.// 내 나이보다 더 오랜 세월 동안/ 우리 집을 지키던 감나무에 생긴/ 톱날 자국에 잘려 나는 아득해졌다.// 아들이 내려와 살지 않으리라 내다보신/ 아버지를 읽고 감나무처럼 숨이 턱 막혔다.”
90을 바라보는 아버지가 어느 날 문득 감나무에 더는 오르지 못하겠다고 감나무 밑동에 돌려가며 톱질을 했다. 나무가 더 이상 땅에서 수분을 빨아들이지 못하도록 물관을 잘랐다. 시인은 그 톱 자국에서, 정년을 하고 나면 아들이 혹 내려오겠지 하던 바람을 접은 아버지의 마음을 읽었다. 70년 가까이 마당에서 해마다 붉은 열매를 내주던 감나무는 그렇게 제 소임을 조용히 마쳤다.
‘후한서(後漢書)’ ‘배해열전(裴楷列傳)’에서 배해가 말한다. “승려는 뽕나무 아래에서 사흘 밤을 묵지 않는다. 오래 머물러 은애하는 마음이 생기게 하려 하지 않기 위해서다. 정진의 지극함이라 하겠다.(浮屠不三宿桑下, 不欲久生恩愛, 精之至.)” 석가모니의 시대에 출가한 사람들은 정한 거처 없이 걸식탁발로 살았다. 인도는 더운 나라라 밤중에는 나무 아래서 지냈기에 이런 말이 나왔다.
윤기(尹愭·1741~1826)는 생계가 막막해 살던 집을 팔고 지은 ‘하록의 집을 팔고 나서 읊다(賣荷麓宅有吟)’에서 노래한다. “뽕나무 밑 사흘 자도 그리움이 남느니, 하물며 성 동쪽서 십년을 살았음에랴. 가족들아 길게 떠돎 탄식하지 말려무나. 그저 몸과 마음이 편안하면 그만이니.(桑下尙紆三宿戀, 城東况是十年居. 家人莫歎長飄泊, 只有身心却自如.)” 가족의 역사를 함께 지켜본 감나무의 물관에 톱을 넣어 자르던 아버지의 심정도 이렇지 않았을까 싶다.
나이가 드는 것은 집착을 끊고 미련을 덜어내어 조금씩 가벼워지는 일이다. 쥐었던 것 내려놓고, 먼 데 마음 두지 않고, 사뿐사뿐 걸어가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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