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世說新語] [625] 행불리영 (行不履影)
대학 시절 한 동기생의 말투나 기억은 자꾸 희미해지는데,
그가 방정하게 큰절을 올리던 모습은 새록새록 잊히지 않는다.
어쩌면 절을 저렇게 반듯하게 잘할까?
고향이 대전인 그 친구의 절로 인해 대전 사람들은 예의가 반듯하다는 인상이 내게 심어졌을 정도다.
그 뒤 어디서건 큰절을 올릴 때마다 그가 절 올리던 모습을 의식했던 것 같다.
최원오 신부가 번역한 성 암브로시우스(Ambrosius·334~397)의
‘성직자의 의무'를 읽다가 다음 대목에서 이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동작과 몸짓과 걸음걸이에서도 염치를 차려야 합니다.
정신 상태는 몸의 자세에서 식별됩니다. 몸동작은 영혼의 소리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직무에 열성을 다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나는 그를 성직자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의 몸짓이 너무도 무례했기 때문입니다.
또 나는 성직자였던 다른 사람을 만났는데,
다시는 나보다 앞서 걸어가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그의 건방진 걸음걸이가 내 눈엣가시 같았기 때문입니다.”
“훌륭한 걸음걸이도 있으니,
거기에는 권위 있는 모습과 듬직한 무게가 있고 고요한 발자취가 있습니다.
악착같고 탐욕스러운 모습이 없어야 하고,
움직임이 순수하고 단순해야 합니다.
꾸민 것은 아무런 기쁨도 주지 못합니다.
본성이 동작을 빚어내야 합니다.”
이덕무가 쓴 ‘사소절(士小節)’의 다음 대목도 인상적이다.
“집안사람 복초(復初)는 길을 갈 때 그림자를 밟지 않았다(行不履影).
아침에는 길 왼편으로 갔고, 저녁에는 길 오른쪽으로 갔다.
갈 때는 반드시 두 손을 공손히 맞잡고 척추를 곧추세웠다.
일찍이 그와 30~40리를 동행하며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조금도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
“큰길을 걸어갈 때는 반드시 길가를 따라가야지,
한가운데로 걷다가 수레나 말을 피하지 말라. 빨리 걷지도 말고,
너무 느려도 안 된다. 좌우를 힐끗거리지도 말고,
머리를 위아래로 까불지도 말라.
해가 이른지 늦은지를 살펴서 빠르고 느린 것을 가늠해야 한다.”
제 그림자조차 밟지 않은 복초 이광석도 대단하지만
그것을 가만히 지켜본 이덕무도 멋있다.
무심한 동작 하나에도 정신이 깃든다.
어찌 삼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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