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바로세우기운동본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3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청사 앞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서전 출간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문재인 대통령이 성추행 피해를 본 공군 여 부사관 사망 사건과 관련해 공군 참모총장의 사의를 1시간여 만에 수용했을 때 내심 박수를 쳤다. 군내 성추행 문제에 대해 "절망스러웠을 피해자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며 엄단 수사를 지시했다. 지휘라인 최상위 책임자를 신속하게 문책함으로써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도 보였다. 매번 바깥의 적폐로만 향했던 비판의 날이 모처럼 안으로 향했다. 문파나 비(非)문파를 떠나 많은 국민들이 박수를 쳤을 것이다. 이런 게 정치권력이 주는 감동의 메시지 아닌가.
검찰이 노무현 죽게 했다는 착각
검찰 개혁은커녕 독립성 훼손해
되레 읍참조국, 읍참광철했어야
당연한 일이 귀하게 느껴지는 건 문 대통령 재임 4년이 지나도록 이런 류의 경험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국가 지도자의 덕목 중 하나가 읍참마속(泣斬馬謖)의 결단이다. 사사로운 감정을 버리고 공평하게 법을 집행해 나라의 기강을 바로세우는 일 말이다. 제갈량이 절친의 아우인 마속(馬謖)을 군령 위반으로 참하면서 소맷자락으로 눈물을 훔쳤다는 데서 유래했다. 고사에 비춰보면 공참총장은 대통령의 마속에 미치지 못한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 오거돈 전 부산시장,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 쯤은 돼야 한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부사관 사건과 유사한 두 전 시장 사건에 대해서는 엄정 수사·조치를 지시한 적이 없다. 똑같이 직장 상사에 의한 권력형 성범죄 사건임에도 침묵했다. 군인에 비해 시장님들에 의한 성적 괴롭힘의 피해자가 덜 절망스러웠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불공정한 이중 잣대로는 기강을 세우기 어렵다.
대통령이 적기에 '읍참조국'하지 못한 것은 뼈아픈 실책이다. 조국 씨는 회고록 『조국의 시간』에서 "검찰 조직을 지키기 위해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의한) 조국 수사가 시작됐다"고 적었다. 조국 사태를 "검찰개혁의 현실화를 막기 위해 검찰이 수사를 통해 정치를 했다"고 분석했다. 사실과 동떨어진 착각이다. 대통령이 민정수석이던 그를 법무장관에 지명하자 언론이 검증에 나서 갖가지 비위를 들춰내기 시작한 게 발단이었다. 대통령이 지명을 철회했으면 끝날 일이었으나 끝내 장관에 임명했다. 결국 36일 만에 하차했다.
조 씨는 회고록에서 자신과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상황을 동일시했다. 장관 후보직 사퇴를 고심할 때 여권 인사들이 "검찰·언론·보수야당(검·언·정)이 노무현 대통령과 그 측근들을 잡아 족쳤던 상황과 같다. 여기서 무릎을 꿇으면 검찰개혁은 무산될 것이다"라고 만류했다고 소개하면서다. 한 발 더 나가 정경심씨가 연구실 PC를 이용해 위조한 표창장 파일이 나왔다는 2019년 9월 SBS보도를 언급하며 같은 방송사의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논두렁 시계' 보도와 같은 효과를 가져왔다고 주장했다.
엄연한 현실과 굴절된 그의 관점에는 괴리가 존재한다. 조 씨는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진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주장한다. 대통령도 그렇다. 이 거대한 착각이 검찰 개혁의 시발점이다. 수사 단초가 된 '박연차 게이트'는 꾸며낸 공작·강압 수사가 아니었다. 봉인된 수사 기록에 답이 있다.
그렇다고 이후 검찰 개혁이 똑바로 진행됐나. 조 씨가 밀어붙여 신설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손대는 수사마다 시빗거리를 제공중이다. 법무부의 탈검찰화로 일궈낸 성취는 검찰 수사의 독립성과 중립성 확보와는 거리가 멀다. 정치인 출신들이 장관 자리를 꿰차고 들어와 점령군 사령관처럼 행세한다.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까지 사사건건 간섭하더니 일선 형사부 검사들이 6대 범죄에 대한 수사에 착수할 때도 사전 승인을 받으라고 압박한다.
대통령은 '읍참광철'할 기회도 흘려버렸다. 현직 중 마속이랄 수 있는 이광철 비서관 말이다. 민변 출신인 그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실세다. 문재인 정부 출범후 민정수석이 다섯 번이나 바뀌었지만 그는 4년째 건재하다. 김학의 전 법무차관 불법 출금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 직전 단계이고, 기획사정 의혹으로 수사도 받고 있지만 굳건하다. 피의자들이 양산돼도 내 편이라면 누구 하나 내치지 않는다는 게 인사 정책의 기조같다. 우리 편은 정의롭다는 착각에서 기인한다. 아마도 가장 큰 착각은 추미애 전 장관이 터를 잡고 박범계 장관이 완결한 호남 편중 인사로 검찰 요직에 앉힌 내 편 검사들이 우리 편을 끝까지 지켜줄 것이라는 기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중 누군가가 윤석열 전 총장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나. 칼에는 눈이 없다.
조강수 논설위원
[출처: 중앙일보] [조강수의 시선] 조국의 거대한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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