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신윤복, '단오풍정'(端午風情·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 종이에 채색, 28.2x35.6㎝, 간송미술관 소장.
이달 14일은 우리의 잊힌 명절 단오다. 오늘은 널리 알려진 신윤복의 풍속화 단오풍정(端午風情)을 소개한다. 배경은 숲속의 너럭바위를 감싸는 실개천이 흐르고 주위는 숲으로 둘러싸여 만들어진 은밀하고 아늑한 공간이다. 기생으로 보이는 여인 몇이 대담하게 야외에서 낮 목욕을 하러 나왔다. 그러나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 숨어서 목욕 모습을 보고 즐거워하는 동자승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네를 타거나 쉬고 있는 세 여인 옆에는 굵은 나무 두 그루가 그림의 중심을 잡고 있다. 그네 타는 여인 옆의 고목나무는 왕버들이다. 버들 종류로서 크고 당당하게 자라며 오래 살아 버들의 왕이란 뜻으로 왕버들이란 이름을 얻었다. 한 아름이 훌쩍 넘는 고목임을 짐작할 수 있다.
굽은 줄기 가운데가 썩어 큰 구멍이 생겨 있다. 옷을 갈아입을 수 있으며 소지품을 보관할 수도 있고 급할 때는 벗은 몸을 잠시 숨기기에도 안성맞춤이다. 훔쳐보는 동자승 머리 위로 왕버들 가지는 짧게 그려져 있다. 하지만 왕버들 가지는 원래의 자람 특성으로 봐서 동자승의 얼굴을 가릴 정도로 이보다는 더 길게 뻗어 있었을 터이다. 그래야 들키지 않고 훔쳐볼 수 있다. 화가는 더 박진감을 주기 위하여 아래로 늘어진 가지는 과감히 생략해 버린 것이다.
그림에서 보이지 않은 왕버들의 굵은 가지에 그네를 맸다. 노랑 저고리에 붉은 치마로 단장한 멋쟁이 여인이 지금 막 그네를 구르고 나설 태세이다. 또 다른 나무 아래에서는 한 여인이 가체를 길게 내리고 편안하게 쉬고 있다. 기대듯 한 나무는 잎이 역삼각형으로 그려져 있다. 단풍나무의 한 종류인 신나무다. 단풍의 붉음이 진하여 아름다움으로 친다면 진짜 단풍나무보다 오히려 더 곱다. 둘 다 이런 장소에 흔히 자라는 나무다.
좁은 실개천이 ㄴ 자로 꺾이면서 잠깐 물이 고이는 곳에서 가슴을 드러낸 네 여인이 목욕하고 있다. 몰래 훔쳐보는 즐거움에 빠진 동자승이 ‘혹시 들키면 어쩌지?’ 하고, 지켜보는 우리도 조마조마하다. 역시 가슴이 노출된 여인이 이고 가는 보퉁이에서는 호리병이 불쑥 내밀었다. 목욕 후 상쾌한 기분으로 한잔할 술이나 음료수가 들어 있을 터이다. 노랑, 검정, 빨강의 오합(烏盒)에는 간식거리와 안주가 들어 있을 것이다. 실개천 가장자리의 풀은 대사초 종류다. 반신욕만 하러 나온 듯, 단옷날의 머리 단장에 필요한 창포는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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