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봉의 漢詩 이야기

비와 산촌

bindol 2021. 6. 12. 05:29

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여름이 되면 부쩍 비 내리는 일이 잦아진다.

여름 비는 겨울 눈만큼은 아니지만 사람들로 하여금 격리감을 느끼게 한다.

같은 곳인데도 비 오는 날 찾으면 한결 호젓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唐의 시인 王建은 여름 어느 날 비를 만났는데 그때 마침 이름 모를 산골 마을을 지나던 터였다.

 

비와 산촌(雨過山村)

 


雨裏鷄鳴一兩家(우리계명일양가) 빗속에서 한 두 집에 닭이 울고
竹溪村路板橋斜(죽계촌로판교사) 대나무 개울 마을 길에 널빤지 다리 걸쳐 있네
婦姑相喚浴蠶去(부고상환욕잠거)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서로 불러 다정히 누에 씻으러 나가고
閑着中庭梔子花(한착중정치자화) 마당 안에는 한가로이 치자꽃이 피었네


산골 마을 풍광이야 어디든 크게 다를 바 없겠지만 관건은 시인의 심리이다.

그 마을에 몇 집이나 있는지 모르겠지만 닭 우는소리는 한 두 집뿐이다.

비로 말미암아 마을의 소리가 푹 줄어든 것이다.

실제로는 안 그럴 수도 있겠지만 시인은 그렇게 느낀다.

그리고 대나무 사이를 흐르는 시내 위에 놓인 널빤지 다리가

비스듬히 기운 모습이 시인의 눈에 우선 들어온다.

이 역시 비의 영향이리라.

이런 가운데 어디선가 고부간에 서로를 찾는 소리가 들린다.

고치 알을 씻으러 가기 위해서이다.

이 소리가 유독 시인의 귀에 들어온 것 또한 비로 인한 것이다.

이렇게 두 여인이 빠져나간 집을 차지한 것은 마당 가운데 핀 치자 꽃이었다.

한가롭기 짝이 없는 풍광인데 이 또한 비의 선물이다.

산골 마을 정경은 보통 번잡한 도회지에 비해 호젓하고 한적해 보이기 마련이다.

여기에 비가 더해지면 그런 느낌이 배가되는데 이는 비가 만들어 주는 격리감 때문이다.

도시의 바쁜 일상에 파묻혀 사는 사람들은 비 오는 날 산골 마을을 찾아 가 보는 것이 좋다.

그곳의 한적함과 호젓함이 그동안 쌓인 삶의 찌꺼기들을 기적처럼 씻어 줄 것이다.

/서원대 중국어과

출처 : 충청타임즈(http://www.cctimes.kr)

'김태봉의 漢詩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접시꽃  (0) 2021.07.06
여름 마당  (0) 2021.06.25
잔을 띄워라  (0) 2021.06.12
산으로 돌아가다  (0) 2021.05.15
봄날은 간다  (0) 2021.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