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여름은 장마에, 또 더위에 사람들이 시달리는 계절이지만,
한편으로는 한가한 때이기도 하다.
바쁜 농사일도 잠시 쉬어 가는 시기이고 사람
만나는 일도 뜸해지는 철이기도 하다.
그래서 여름은 지내기 어렵기도 하고 쉽기도 한 이율배반적 계절이다.
朝鮮의 시인 南秉哲이 그린 여름은 어느 경우일까?
여름날 짓다(夏日偶吟)
雨聲終日掩柴門 우성종일엄시문
水齧階庭草露根 수설계정초로근
園事近來修幾許 원사근래수기허
櫻桃結子竹生孫 앵도결자죽생손
빗소리 종일이라 사립 닫고 있었더니
물이 뜰 계단에 스며 풀뿌리 드러났네
마당 일 요즘 들어 어찌 됐나 둘러보니
앵두는 아들 낳고 대나무는 손자 봤구려
비 내리는 여름 어느 날,
시인은 온종일 사립문을 걸어 둔 채 문밖에 나서지 않고 방 안에만 머물고 있었다.
빗소리가 온종일 그치지 않고 들리자 시인은 밖이 궁금했는지
방문을 열고 마당 쪽을 내다보았다.
그랬더니 뜰 계단에 빗물이 스며들어 거기 난 풀들의 뿌리가 드러나 보였다.
그만큼 비가 많이 온 것이다. 시인은 그제서야 생각이 났던지 마당 일이 궁금해졌다.
마당에는 앵두와 대나무가 자라고 있었는데 요즘 도통 눈여겨본 적이 없었던 터라
혹시 비 피해라도 입지 않았나 걱정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의 걱정은 그야말로 기우였다.
걱정과는 반대로 앵두 집안과 대나무 집안에 모두 큰 경사가 있었으니
앵두는 아들을 낳았고 대나무는 손자를 봤던 것이다.
한동안 무심했던 마당의 나무들에 시인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바로 여름 비와 그것이 만들어 준 한가로움 때문이다.
여름 비는 무섭기도 하고 지겹기도 하지만 따지고 보면
고마운 생명수이기도 하다.
온 산이 푸른 것도 들판 농작물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것도 다 여름 비 덕이다.
아끼는 정원의 나무들이 자손을 번성하는 것도 그 덕이다.
여름 비는 피할 수 없는 자연현상이다.
인간은 그에 순응하면서 살면 그만이다.
여름 비가 만들어 주는 풍요와 한가로움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멋스러운가?
/서원대 중국어과
출처 : 충청타임즈(http://www.cc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