姜太公(강태공)과 腹水不返盆(복수불반분)
窮八十達八十(궁팔십 달팔십:팔십년은 어렵게.팔십년은 榮光스럽게)
김창길 한자신문
姜太公(강태공)과 腹水不返盆(복수불반분) 窮八十達八十(궁팔십 달팔십:팔십년은 어렵게.팔십년은 榮光스럽게) 姜太公과 그 婦人과의 逸話에서 나온 이야기로 覆水不返盆 한번 업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수 없다는 有名한 逸話이다. 千字文 67번째 文章 磻溪伊尹(반계이윤)은 佐時阿衡(좌시아형)이라 文王은 磻溪에서 姜太公을 맞고, 銀王은 新野에서 伊尹을 맞았다. ‘磻溪(반계)“는 姜太公이 낚시질 하던 渭水(위수)의 한 支流이다 ‘佐時(좌시)’는 姜太公이 낚시질하다가 얻은 玉에 ‘姬受命 呂佐時(희수명 여좌시:희씨가 천명을 받는데 여씨가 돕는다) 라는 句節에서 由來된 것으로 呂尙을 指稱하며 危急한 때를 도와 功을 세워 阿衡의 벼슬에 올랐다.라는 이야기를 記錄하고 있다 磻溪는 周나라 文王과 武王을 도와 周나라를 세우는데 큰 孔을 세운 太公望 呂尙이 살던 地名인 이지만 千字文 에서는 는 太公望 卽 姜太公을 指稱한다. 普通 "姜太公"이라고 불리는 太公望 "呂尙"은 서백창에 依해 登用되어 周나라의 기틀을 다진 人物 이었다. 姜太公의 이름은 姜太公, 太公望, 呂尙, 여아, 강망, 강상, 강자아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왜 이리 이름이 많은가? 姜太公의 姓이 姜씨인가 呂씨인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解釋이 있다. 하나는 姓은 姜, 封土(제후를 봉하여 준 땅)는 呂라는 說明이다. 타고난 姓은 姜이고, 呂땅에 封土를 받았음으로 그 땅이름을 姓으로 取한다는 것이다. 이런일은 많다. 三國志에서 한 가닥하는 司馬懿의 姓인 司馬, 이 성은 벼슬이름인 司馬와 같다. 部隊의 參謀쯤 되는 벼슬인데, 아마 司馬懿의 祖上中 누군가가 저 벼슬을 했을게다. 해서, 너무나 자랑 스러워서 姓을 바꿔버린게다. 두번째 解釋은, 姜은 姓, 여는 氏(씨)라는 설명이다.. 姓이랑 氏랑 다른건가 하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성이랑 씨는 다르다. 같은 姓을 쓰는 사람보다 같은 씨를 쓰는 사람이 가깝다. 家門이 다르므로 古代에는 같은 姓이라도 家門에 따라 다른 씨를 썼다. 정확하진 않겠지만, 그나마 가장 가까운 예를 들라면, 金海 金氏와 金海 許씨... 둘 다 祖上은 같지만, 아들대에서 다른 씨를 쓰는 例일 것으로 생각 한다.. 姜太公과 그 有名한 覆水不返盆에 대해 論해 보기로 하자 姜太公 즉 呂尙은 젊어서는 工夫에만 힘쓰고 집안일에는 도무지 神經을 쓰지 않았다. 10年이 지나고 20年이 지나도 늘 그런 狀態이니 집안 形便이 말이 아니었다.그의 아내는 이런 男便을 바라보고 살다가 마침내 지쳐 달아나고 말았다. 한편 人材를 求하기에 餘念이 없던 서백은 어느 날 사냥을 나가기 위해 占을 쳐 보았다. 占卦는 大吉 이었다. "얻는 것은 龍도, 곰도, 蛟龍도, 범도 아니다. 얻는 것은 王을 補佐할 人物이다." 서백은 內心 기뻐하며 이리저리 달리며 사냥을 했다. 그러나 이날 따라 잡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는 사이 수레는 어느새 渭水 가에 다달아 있었다. 멀리 바라보니 한 老人이 홀로 앉아서 낚싯줄을 던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 老人은 오고가는 사람들을 못 본 척하고 낚시질만 하고 있었다. 그 老人의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서백은 그 老人이 例事 사람이 아님을 直感的으로 깨달았다. 그는 그 老人의 곁으로 다가가 鄭重히 人事를 드리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곁에 가서 말을 걸어보니 놀랍게도 참으로 대단한 人物 이었다. 그 老人은 바로 姜太公 이었다. "나의 祖父인 古公亶父 께서는 世上을 뜨기 전에 앞으로 훌륭한 사람이 나타나 나를 도와 周族을 繁昌하게 할 것이라고 하였 습니다.當身이야 말로 바로 그 사람 입니다." "삼가 가르침을 받고자 합니다." 마침내 서백은 姜太公을 스승으로 받들었고, 姜太公은 서백을 도와 周나라를 爲해 일하여 마침내 周나라가 天下를 制覇하는 데 커다란 役割을 했다. 姜太公은 周 文王의 祖父(고공단보)가 기다리던 人物이라 하여 "太公望"이라고 불려 졌으며, 그의 姓이 姜씨였기 때문에 後世 民間에서는 모두 그를 "姜太公"이라고 불렀다. 周나라가 세워진 後 銀 王朝를 滅亡 시키고 周나라를 建國 하는데 功이 컸던 姜太公은 "제"땅에 封해져 諸侯가 되어 臨地로 떠나게 되었다. "제"는 特히 姜太公의 故鄕 이었으므로 錦衣還鄕 하는 그의 마음에는 기쁨과 錯雜함이 엇갈리고 있었다. 지난날의 수많은 일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特히 가난한 집안 살림을 도맡고 自身을 돌보다가 견디지 못해 달아난 婦人에 對한 感情이 그를 휘감고 있었다. 姜太公이 赴任하니 주위의 사람들이 머리를 조아리고 길을 내주었다. 그런데 초라한 늙은 女人의 모습이 太公望의 눈에 띄었다. 낯이 익은 女人 이었다. 바로 자기를 버리고 달아난 婦人 이었던 것이다. 姜太公 呂尙은 侍從을 시켜 그 女人을 수레 앞에 대령 시켰다. 영문을 몰라 어쩔 줄 모르는 女人에게 姜太公은 말했다.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 보시오." 그 女人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諸侯로 赴任된 輝煌燦爛한 男便의 모습을 보고 女人은 옛 情을 생각해서라도 다시 아내로 맞아 달라고 哀願했다. 姜太公은 侍從을 시켜 물을 한 그릇 가져오게 한 후 땅바닥에 그릇의 물을 쏟고는 말하였다. "한번 엎질러진 물이 다시 그릇으로 돌아올 수 없듯이 한번 끊어진 因緣도 다시 맺을 數가 없는 法이오." 姜太公 呂尙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가던 길을 재촉했고,女人은 悔恨의 눈물을 흘리며 길에 주저앉고 말았다고 한다. 姜太公과 關聯된 故事成語로 窮八十 達八十(궁팔십 달팔십)이다.80年을 어렵게 살고 80年은 榮光스럽게 살았다는데서 뒤늦게야 世上의 뜻을 이룬 사람을 일 컫는다. 앞에서 열거 했듯이 姜太公과 婦人과의 逸話에서 나온 ‘覆水不返盆(복수불반분:한번 엎질러진물은 다시 담을수 없다)은 世人들의 입에 자주 膾炙 되는 이야기다 *膾炙(회자 : 회 회. 구울 자) - 본래 회와 구운고기라는 뜻이며 즉 회쳐먹고 구어먹는다는 이야기로 널리 稱讚을 받으며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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