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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운의 漢字 이야기 - 閔損單衣(민손단의)

bindol 2021. 6. 26. 20:12

오륜행실도에 나오는 한겨울에 홑 옷을 입은 민손.  김홍도 그림

 

 

'한겨울에 입은 민손의 홑옷'이란 뜻으로 효도와 그의 강직함에 관한 이야기다.
“어머니 계시면 한 자식(子息) 춥지만, 어머니 안계시면 세자식이 외롭다”

 

민손은 노나라 사람으로 성(姓)은 민(閔)이요 이름은 손(損)이며 자(字)는 자건(子騫)으로 흔히 민자건으로 더욱 알려 졌으며 효도와 더불어 강직하기로 유명하다.

민자건은  공자(孔子) 문하의  십대(十代) 제자(弟子) 중에서도 안회(顏回)와 염백우(冉伯牛), 염옹(冉雍)과 더불어 덕행(德行) 실천(實踐)이 뛰어난 제자로 공자로부터 칭찬(稱讚)을 많이 받았던 사람이다.

그는 평생 대부(大夫)를 섬기지 않았으며 , 의롭지 못한 군주의 봉록(俸祿)을 받지 않았다, 권문(權門)에 벼슬 하지 않고 도를 즐겼으며, 온화하고 정직 했으며 신중하고 정확한 언행으로 뛰어나다,

그의 어릴 적 이야기는 그가 얼마나 효심(孝心)이 깊은 사람이었는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그는 7살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고 새어머니를 맞았다.

그 후(後) 새어머니가 아들 형제(兄弟)를 낳았는데, 자기(自己)가 낳은 아들만 귀여워하며 민손을 구박(驅迫)했다.

추운 겨울이 되어도 자기가 낳은 자식들은 솜옷으로 따뜻하게 해 주면서도 민손에게는 갈대를 넣어 보기에만 두툼한 옷을 입혔다.

섣달 그믐날, 민손은 아버지와 함께 큰할아버지 댁(宅)으로 인사(人事)를 가게 되었다. 신이 난 민손이 마차(馬車) 몰기를 자원(自願)하며 말을 열심(熱心)히 몰았다.

그런데 바람이 몹시 부는 추운 겨울인지라 민손의 몸이 얼기 시작(始作)했고 손까지 얼어 그만 말채찍을 놓쳐 버리고 말았다.

“에잇! 바보 같은 녀석.”
몸이 얼어 꾸물대는 민손을 보다 못한 아버지가 민손의 옷을 잡아 당기다가 옷이 찢어졌다.

그런데 그 속에서 솜이 아닌 갈대가 쏟아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민손의 아버지는 즉시(卽時) 사태(事態)를 짐작(斟酌)했고 이에 주먹을 불끈 쥐고 당장 집으로 되돌아갔다.

“아니 이런 몹쓸 계집이 있나. 자기가 낳은 자식이 아니라고 이 추위에 갈대옷을 입히다니!
당장 이 집에서 나가!”
아버지는 분(憤)을 참지 못하고 새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에 새 어머니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한 채 겁(怯)을 먹었고,
어린 두 동생들은 새 어머니의 치마자락을 붙잡고 울기만 했다.

이에 민손이 아버지에게 무릎을 꿇고 애원(哀願)했다.

“아버지, 참으세요. 지금(只今) 아버지께서 참으시면 한 명(名)의 아들이 추우나,
어머니가 안 계시면 세 아들 모두가 춥게 됩니다.”

민손의 이 말에 아버지는 물론(勿論) 새어머니도 크게 감동(感動)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 후부터는 자애롭고 착한 어머니가 되어 행복(幸福)한 가정(家庭)을 이끌어 나갔다.

이 글은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의 민손단의(閔損單衣)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 마지막 부분(部分)에 나오는, 아버지를 만류(挽留)하는 민손의 너그러운 마음씨는 시대(時代)를 초월(超越)하여 영원(永遠)한 감동을 안겨 주고 있는 이야기다.

중국에서는 일찌감치 효렴제도(孝濂制度) 즉 효도하고 청렴한자에 대하여 인구 20만명당 한명씩 관리로 추천해 의해 등용하는 제도가 있어 효를 장려 하였다.

신이 주신글 천자문의 저자 종요(鍾繇)도 효렴제도에 의해 발탁된 인물이다. 

지금도 중국에서는 북경대학, 우리나라로 말하면 국립대학인 서울대학에 각 지방에서 추천을 받아 입학 시키고 졸업후에는 자기 고향에 돌아가 의무적으로 몇년간 공무원으로서 봉직 하는 제도가 있다는 말을 중국 여행시에 들은바 있다.

'될성 싶은 아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이 있다. 논어(論語) 옹야편에 민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당대(當代)의 실권자(實權者)인 계씨가 비땅에서 반란(叛亂)이 자주 일어나자 효성이 뛰어난 민손을  비읍의 재상(宰相)으로 삼으면 반란을 예방 할것으로 판단하여 민손을 읍재 삼으려 사람을 보내 모셔 오려고 하였다.

그러나 민손은 심부름온 사자(使者)에게 오히려 정중하고도 간곡하게 말하길 “나를 위(爲)해 잘 말해 주시오"  "만약에 나에게 벼슬을 주려고 다시 한번 찾아 온다면 나는 노나라를 떠나 인근(隣近) 제나라나로 갈것이요." 즉(卽) 다시 벼슬을 주겠다고 나를 찾아오면 나는 이나라를 떠나 겠다는 말이다.

다시말해 민손의생각에는 의롭지 못한 계씨의 밑에서 벼슬 한다는 것은 마치 계씨의 부귀(富貴)를 보기를 개, 돼지로 여길 뿐만 아니라 또한 개, 돼지같은 주인 밑에서 어찌 신하(臣下) 노릇을 하겠는가 하며 강하게 벼슬을 사양(辭讓)한 것이다.

민자건(閔子騫)이 벼슬 하지않은 이유(理由)는 하나이다.

노나라의 대부(大夫)인 계씨는 엄연(儼然)한 군주(君主)가 있는 데도 마음대로 국정(國政)을 농단(壟斷)하고 백성(百姓)들을 학대(虐待) 한 것이다.

그래서 여러번 그에게 벼슬을 권(勸)했지만 사양한 것이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事件)으로 온통 나라를 뒤 흔들어 놓고 있는 요즈음 정치인(政治人)들이 민자건과 같은 관직(官職)을 거부(拒否)할 정도(程度)의 단호(斷乎)한 결백성(潔白性)이 필요(必要)로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아무리 일부 관료(官僚)나 국회의원(國會議員)이 온세상(世上)을 뒤 흔들어 놓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난세(亂世)에 더욱 진실(眞實)로 의롭지 못한 군주의 봉록을 받지 않고  관직을 사양하는 민손의 정신(精神)이 아쉬운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