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KBS가 만든 ‘나쁜 이대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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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페이지 조선일보 경제부 김신영 기자입니다. 조선일보 경제부 김신영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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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이대남 그래프.
얼마 전 KBS가 보도한 그래프 하나가 문제다. 온라인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청년(20~34세)과 중년(50~59세)을 각각 남녀로 구분해 4그룹을 300명씩 조사했는데 유독 ‘청년 남성’만 돈이 많을수록 가진 것을 남과 나누겠다는 비율이 줄어들었다. 이대남(20대 남성)의 사악한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증거라는 설명과 함께 온라인 커뮤니티에 많이 공유됐다. 여당 지지도가 유난히 낮은 20대 남성을 탐탁지 않게 생각해 온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이 악플을 많이 달았다.
20대 남성은 정말 이기적일까. 보도가 나오고 나서 몇몇 학자가 이 그래프의 데이터에 문제 제기를 했다. 소득 수준을 10단계로 구분해 설문했는데 구간별로 충분한 데이터가 있는지를 물었다. 연구팀에 따르면 소득 수준은 응답자가 스스로 정한 등급이라고 했다. 스스로 소득 최상위라고 할 청년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도대체 300명 중에 몇 명이 “돈이 많아져도 남과 나눌 생각은 없다”고 했을까. 300명 중에 10명이나 될까. 온갖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논란이 커지자 연구에 참여한 교수들이 지난달 30일 조사 결과를 설명한 보고서를 공개했다. 공개된 데이터를 보니 소득 최상위 등급(9·10등급)이라고 한 응답자는 0명이었다. 응답자가 없는데 ‘나누기 싫어하는 이대남’이라는 그래프가 만들어진 것이다. 통계 기법이 활용됐다고 하는데, 상식적인 눈높이로 보면 억지스럽다. 연구팀은 사용된 통계 기법이 “중급 통계 시간에 다루는 순서형 로짓과 이항 로짓”이라며 전문 용어를 동원해서 설명했다. ‘예측 확률’이란 분석법을 쓰면 응답자가 없는 구간에 대한 추정치를 그래프에 그릴 수 있고, 틀리지 않는다고 한다.
연구자들 말대로 ‘일반인이 이해할 수 없는 분석법'을 썼다면 그렇다고 밝혔어야 했다. 하지만 KBS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최상위층 응답자가 0명이었다는 사실, 그래서 그 구간에 그려진 선은 추정치라는 설명은 어디에도 없었다.
KBS는 이런 그래프를 근거로 내세우면서 ‘청년 남성은 계층 의식이 높을수록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눌 생각이 적어지는 경향을 보인다'고 보도했다. 결과를 입맛대로 반죽해 가공의 ‘나쁜 이대남’을 만들어냈다. 세금과 다름없는 수신료를 받는 공영방송이 분석 방법 등을 제대로 밝히지도 않은 그래프를 보도하고, 사과도 없다.
연구자들은 보고서에 “보도 전 제작진과 그래프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하지만 이것은 일반적인 관행에 비춰봤을 때 이례적이진 않다”고 적었다. 뭔가 잘못 알고 있지 싶다. 기획을 함께 진행한 학자와 상의도 안 하고 논란이 큰 그래프를 맘대로 보도하는 게 KBS의 관행일지는 몰라도 언론의 관행은 아니다. 문제의 그래프는 여전히 KBS 홈페이지에 올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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