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강수의 시선]좋은 검사, 나쁜 검사, 이상한 검사
김오수 검찰총장이 지난달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예방한 후 대표실을 나서고 있다. 그는 월성 원전 사건과 관련해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 대한 기소를 어제 승인했다. 뉴시스
검사는 독립 관청이다. 거악에 대해 독자적인 수사권과 기소권을 행사, 이른바 '밥값'을 한다. '검사가 범죄를 보고 지나쳐선 안된다'는 직무 원칙 같은 것도 있다. 현 정부의 검찰 개혁 결과, 수사권은 쪼그라들었고 기소권은 쪼개졌다. 검사가 밥값 제대로 못 하는 세상이 온 것이다.
검사가 밥값 하던 때가 있었다. '밤나무 검사'로 통하는 송종의 전 법제처장이 대전지검장 때 경험이다. "끈질긴 젊은 검사가 광주지검에서 찾아낸 재판기록. 그 안의 입출금이 빈번하게 기록된 빛바랜 예금통장 사본 한장. 그리고 수상한 여인의 행적. 그게 오대양 사건 수사(※32명 집단 자살극의 범인 6명 자수 사건)의 시발점이었다. '000의 예금 계좌를 신속히 추적하라'는 게 검사장의 첫 번째 직무명령이었다.
추미애 때 '이상한 검사들' 출현
수사 막고 기소 않고 공모까지
YS·DJ, 아들 수사도 중단 못시켜
수사는 신속과 정확 두 개의 축이 유기적으로 기능할 때 성공한다. 그때부터 10여년 전의 입출금 전표가 보관된 과천과 대전의 은행 지하실 창고를 헤매고 다니는 두더지 행각이 시작됐다."(송종의, 『밤나무 검사의 글자취』) 그는 검사 때는 강직한 성품으로 권부의 실세에게 여러 차례 곤혹스러운 경험을 안겨줬고 퇴임 후엔 대형 로펌에 가는 대신 논산으로 내려가 밤나무와 딸기 농사를 짓는 길을 택했다. 극히 드문 경우다. 좋은 검사의 표상이다.
송종의 전 법제처장이 최근 펴낸『밤나무 검사의 글자취』자취. 춘몽 80년 등의 수상문이 들어있다.
검찰 조직은 무소불위의 권한을 휘두른 혐의로 개혁 대상에 올랐다. '대한민국은 검찰공화국'이라는 오명도 들었다. 사실 그 공화국 연못에서 검사들은 특수부, 형사부, 공안부로 주특기는 달랐지만 가붕개(가재·붕어·개구리)처럼 한동안 잘 지냈다. 인사는 지연·학연·혈연·관운도 작용했지만 능력 중심이었다. 열과 성을 다하는 좋은 검사와 일부 나쁜 검사(※스폰서 검사, 성추문 검사, 폭행 검사, 뇌물 검사 등)로 구분이 가능했다. 추미애 전 법무장관 때부터 인사가 내편과 네편의 이분법으로 바뀌었다. 이후 검사들은 공공의 적 토벌이라는 존재 목적은 망각했다. 내부 반목과 적대적 대치가 일상화됐다.
이 과정에서 검사의 새로운 종(種)이 등장했다. 좋은 검사도, 나쁜 검사도 아닌 '이상한 검사들'이다. 왜 이상하냐고? 정상이 아니라서다. 검사가 당연히 해야 할 수사를 못하게 막고 권력의 편에 서서 진상을 얼버무리고 덮으려 한다. 현장의 검사들은 수사의 칼날을 권부로 들이미는데 큰 방에 앉은 검찰총장과 참모들은 방패막이 하느라 분주하다. 대전지검의 월성 원전 사건 수사와 관련해 백운규 전 장관 등에 대한 기소 건의는 대검 수뇌부에 의해 여러 차례 묵살됐다. 흑을 흑이라고 하고, 백을 백이라 하면 될 텐데 일언반구없이 결재를 안 하다가 어제 뒤늦게 기소했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조차 재임때 자신의 아들 수사를 중단시키지 못했다. 법무부 장관 등을 통해 다그쳤지만 성난 민심에 포기했다. 이 정부 검찰에선 수사 무마·방해, 중단 압력이 버젓이 자행된다. 검사가 스스로 공모자나 공범이 되기까지 한다. 김학의 전 차관 불법 출금 수사 무마 사건이나 기획 사정 의혹이 그렇다. 피의자 차장, 피의자 검사장이 한둘이 아니다. 인사에서 불이익을 주기는커녕 영전시켰다. 집단 법률 무감각증 아닌가.
대전지검 부장검사 10여명이 백 전 장관 등에게 배임 혐의를 추가해 기소할지 여부를 논의하는 자리는 비장했을 것이다. 검사장에 이어 수사팀장마저 다른 데로 전출가자 검찰 중간간부 인사 발표 하루 전에 마지막 총의를 모으는 자리였다. 독립운동가들의 거사 전야 심정이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현장을 목격한 검사로서 할 건 다 했음을 기록으로 남기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 같다. '만장일치 기소 의견'이라는 총의를 들고 새로 부임한 검사장이 혼자 검찰총장을 만난 결과는 직권남용 혐의만 적용하고 배임 혐의는 빼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배임 혐의는 아킬레스건이다. 한전 주주들로부터 초대형 손해배상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
2013년의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과 빼닮았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국정원법 위반에 더해 공직선거법 위반까지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문제를 두고 장관과 총장이 맞붙으며 1주일간이나 결재가 늦어졌다. 그때 결론은 두 개 혐의를 다 적용하되 불구속기소 하는 선의 절충이었다.
같은 날 수원지검 수사팀도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에 대한 기소 방침을 대검에 다시 보고했다. 젊은 검사들이 "여기 검사가 살아있소"라고 웅변하듯, 끈질기게 문을 두드리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이상(異常)이 정상(正常)을 잠시 밀어낼 수는 있어도 오래 그러지는 못한다. 이상한 검사들이 설 자리가 없어야 검찰이 바로 선다. 그게 아니라면 골백번 개혁해도 검찰 중립과 독립은 도루묵이다.
조강수 논설위원
[출처: 중앙일보] [조강수의 시선]좋은 검사, 나쁜 검사, 이상한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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