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윤의 슬픈 중국]"펜대만 돌리는 지식분자... 부패한 영혼 교정"
‘우파 사냥’ 위해 “당의 오류 지적하라” 격려
속내 털어놓자 기다렸다는 듯이 숙청 나서
송재윤의 슬픈 중국: 문화혁명 이야기 <4회> 비판적 지식인을 숙청하라! ◇마오쩌둥, 반지(反智)의 제왕
문화혁명은 반우(反右)투쟁, 곧 우파 사냥이었다. 우파의 대부분은 지식분자들이었다. 문화혁명은 결국 지식분자를 숙청하는 반지(反智)의 폭력이었다. 반지(反智)란 지성을 거부하고 지식을 폄하하는 문명-파괴적 태도를 이른다. 마오는 지식분자를 의심하고, 경계하고, 혐오했다.
독재정권은 지식인을 탄압한다. 1920~30년대 스탈린은 다수의 작가, 언론인, 예술가들을 학살했다. 스페인 내전 이후 프랑코 정권이 제거한 20만의 반정부세력 대다수는 지식인들이었다. 1970년대 캄보디아 킬링필드의 주범 폴 포트(Pol Pot, 1925-1998) 역시 수십 만 명의 지식인을 학살했다. 문화혁명 당시 마오의 오른팔 캉성(康生, 1898-1975)은 공개적으로 폴 포트의 노선을 지지했다. 폴 포트 노선이 마오주의의 분파였음은 많은 학자들의 연구가 증명한다. 스탈린에서 마오를 거쳐 폴 포트로 이어지는 반지(反智)의 계보이다.
마오의 지식인 혐오는 뿌리 깊다. 그는 1921년 7월 말 중국공산당 창당대회에 참석했던 13인 중의 한 명이었다. 혁명가로선 최고의 이력을 얻었지만, 당시 그는 베이징 대학 도서관의 사서에 불과했다. 당시 베이징 대학 캠퍼스는 다양한 사상이 만개하던 백가쟁명의 해방구였다. 그 캠퍼스에서 마오는 우쭐대고 뽐내는 거만한 대학생들에 열등감을 느꼈다. 그 열등감이 이후 복수심으로 변했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마오는 1950년대 내내 언론인, 학자, 문인은 물론, 과학자들까지 일상적으로 탄압했다. 그는 무산계급의 노고를 모르는 채 “펜대만 놀려대는” 지식인들의 “부패한 영혼”을 교정하려 했다. 교정의 방법은 강제노역이었다. 1950년대 초반부터 책잡힌 지식인들은 모두 ‘라오가이(勞改)’에 감금됐다. 황무지나 광산에 위치한 라오가이에 끌려가면 노예노동의 일상이 펼쳐졌다. 한 연구에 따르면, 마오가 지배하는 27년 간 연평균 100만 명씩 도합 2700만 명이 라오가이에서 처형되거나 자살하거나 과로사했다.
Harry Wu, Laogai: The Chinese Gulag, p. 72
◇동굴 속 뱀 꺼내기 위해 연기를 피우는 인사출동(引蛇出洞): 우파사냥의 기술
1939년 12월 1일 중공 중앙위원회에서 마오는 선포했다. “지식인들의 참여 없이 혁명의 승리는 불가능하다! 지식인들을 포섭하라!” 중공 점조직을 타고 젊고 발랄한 도시출신 지식층이 몰려들자 마오는 그들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옌안의 정풍운동(1942-1944) 당시 마오는 캉성을 통해서 불온분자를 가려내게 했다. 그 방법은 놀랍게도 “표현의 자유”였다. 마오는 청년당원들을 향해 자유롭게 당의 오류를 지적하고 문제점을 비판하라고 격려했다. 마오가 거듭 다그치자 순진한 청년들은 속내를 털어놓고 중공정부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기다렸다는 듯 마오는 180도 방향을 틀어 그들을 숙청했다. 동굴 속의 뱀을 꺼내기 위해 연기를 피우는 인사출동(引蛇出洞)의 속임수였다. 마오는 이후 그 방법을 양모(陽謨)라 불렀다. 공공연한 음모(陰謀)라는 의미이다.
1956년 말부터 마오는 바로 그 케케묵은 양모를 또 들고 나왔다. “비판 없는 발전은 없다”며 그는 지식인들에 대정부 비판을 요구했다. 전국 곳곳에 “백화제방(百花齊放) 백가쟁명(百家爭鳴)”의 구호가 나붙었다. 이미 당할 대로 당해 온 지식인들의 입은 굳게 닫혀 있었다. 마오는 그들을 부추기며 유혹했다. 열린 비판과 다양한 사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마오의 연설이 관영매체를 타고 날마다 전국에 울려 퍼졌다. 비판자의 신변 안전을 보장하는 공개적인 약속이나 다름없었다. 이에 용감한 지식분자들이 먼저 입을 열었고, 머뭇거리던 자들도 이내 뒤따랐다. 그들은 일제히 성난 비판의 언사를 내뿜기 시작했다. 날마다 대자보가 나붙었고, 정부기관엔 항의의 격서가 쏟아졌다.
1957년 백화제방 운동 당시 온 벽을 채운 정부 비판의 대자보
지식인들의 비판이 위협적이었지만, 마오는 꾹 참고 그들의 항의를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숨어 있는 우파들이 모조리 나올 때까지 집요하게 기다리는 전술이었다. 급기야 1957년 7월 쯤 중공정부는 일제히 공개적인 우파사냥을 개시했다. 2년간 지속된 반(反)우파 운동으로 대략 55만 명이 라오가이로 직행해야 했다.
마오에게 숙청당한 지식인은 두 종류였다. ‘도덕적 비판자’들과 ‘전문가 집단’이었다. 마오는 도덕적 비판자들을 반혁명분자로 몰아갔으며, 정부의 요직에 전문가들 대신 “붉은 투사”를 기용했다. 그 결과 언론계, 문화계, 교육계, 과학기술계는 어용(御用) 지식인들만 득실거렸다. 대장부(大丈夫)는 사라지고 아전(衙前) 무리만 넘쳐났다. 진실추구의 과학자는 간 데 없고 영혼 없는 기술자만 잔류했다.
이제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게 된 마오는 대약진운동(1958-1962)을 개시한다. 그는 우선 대규모 집산화를 추진했다. 농민들은 텃밭을 빼앗기고, 아궁이를 잃고, 사생활 모두를 차압당한 채 집단농장의 농노로 전락했다. 그들은 누천년 축적해 온 자생의 지혜를 상실한 채 굶주리기 시작했다.
마오는 농민들을 향해 15년 만에 미·영을 따라잡자며 대규모 철강생산을 요구했다. 그의 주문에 따라 농촌 마을 뒷마당에는 작은 용광로들이 생겨났다. 과학 상식을 부정하는 최악의 정책이었지만, 아무도 비판하지 않았다. 거짓말을 읊조리는 어용지식인이 펜과 마이크를 장악했기 때문이었다. 관료집단은 통계를 조작하고, 관영매체는 가짜뉴스를 생산했다. 과장하고 조작하는 부과풍(浮誇風), 획일적 규정을 강요하는 공산풍(共産風), 단숨에 큰 성과를 내려는 광열성(狂熱性)이 만연했다.
무비판의 궤도에서 막 달려간 일당독재의 폭주였다. 결과는 인류사 최악의 대기근이었다. 대약진 기간 중 대략 3000만-4500만, 출생하지 못한 인구를 포함하면 7000만이 넘는 인명이 희생되었다.
◇“조반유리(造反有理)”: 무법적 인권 유린이 정당하다는 선언
불과 4년 후 마오쩌둥은 문화혁명을 일으켜 더 큰 규모로 지식인들을 숙청하기 시작했다. 1969년 마오는 홍위병을 낙후된 농촌에 하방(下放)시켜 강제노동에 시달리게 했다. 그는 하방된 홍위병들에 “지식(知識)청년”이라는 이름을 선사했다. 책과 연필 대신 농기구를 들고 혁명정신을 배우라는 주문이었다. 참된 지식은 노동에서 나온다는 반지(反智)의 발상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 인식론에 따르면, 모든 진리주장은 계급적 당파성을 갖는다. 1930년대부터 마오는 입버릇처럼 지식인은 인민의 이익에 복무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그의 눈에 비판적 지식인들은 계급적 당파성을 버리고 인민을 배신한 반동 세력일 뿐이었다.
문화혁명 당시 “비투”(비판투쟁)의 한 장면. “반당 흑방분자 뤼샤(黎俠)”
마오가 직접 나서서 칼을 휘두를 필요도 없었다. 마오를 추종하는 좌파 지식인들이 자발적으로 광기의 마녀사냥을 이끌었다. 그들의 선동에 이끌린 10대-20대의 홍위병 조직은 반혁명 세력을 색출해 집단폭행을 이어갔다. 마오쩌둥은 그들을 향해 “조반유리(造反有理)!”라 말했을 뿐이었다. 반란을 일으킬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다는 말이다. 홍위병식 인민재판, 광장의 집단린치, 무법적 인권유린이 정당하다 선언하는 전체주의 절대군주의 초법적 발언이다.
50-6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문혁의 유령은 2020년 현재 중국 전 대륙을 배회하고 있는 듯하다. 지난 해 12월 말 인터넷에 신종 폐렴의 진실을 알렸던 젊은 안과의 리원량(李文亮, 1986-2020)은 악성루머를 유포했다는 죄명을 쓰고 경찰의 취조에 시달리다가 결국 코로나 바이러스로 사망했다. 리원량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들이 검열의 틈새를 타고 중국의 인터넷에 물밀 듯 쏟아졌다. COVID-19를 애써 “우한폐렴”이라 부를 필요는 없을 듯하다. 아름다운 도시 우한이 무슨 잘못이랴. 미주의 반중언론은 이미 “중공바이러스(CCP virus)”라 명명한 바 있다. 그 근본을 추적해 보면, 우리를 괴롭히는 이 괴질(怪疾)의 병인(病因)은 “문혁 바이러스”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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