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잡은 ‘QR코드 전체주의’...빅브라더가 되어가는 중국 [송재윤의 슬픈 중국]
송재윤의 슬픈 중국: 문화혁명 이야기 <8회> ◇중국 관영매체 연일 “위대한 중공의 영웅적 리더십” 칭송
현재 중국의 관영매체는 살짝 들떠 있다. 날마다 “위대한 중공의 영웅적 리더십”을 칭송하기에 여념이 없다. “오만한 제국주의 국가” 미국이 코로나에 보기 좋게 당했기 때문이다. 2020년 5월 30일 현재 미국의 확진자가 180만에 육박하고, 사망자는 10만을 이미 넘었고, 백만 명당 사망자는 316명이다. 세 지표 모두에서 단연 세계1위다. 반면 중국은 여전히 확진자 8만2천999명, 사망자는 4634명이고, 백만 명 당 사망자는 3명에 불과하다. 설상가상 미국에선 성난 군중의 폭력시위가 터졌지만, 표면적으로 중국은 꽤나 안정돼 보인다.
“미국도 바이러스에 속수무책 무너지는데, 다섯 배 인구의 중국임에랴!” 방역 초기 패닉 상태로 내몰렸던 중국의 인민은 미국의 고전을 보면서 자신감을 회복했다. 방역의 자신감은 애국주의를 부추긴다. 국제사회와의 여론전에 중국의 인민이 나서고 있다.
지난 4월 2일 100명의 중국인 학자들은 미국을 향해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그들은 “한 세기 가장 위험한 전염병에 직면한 지금”, 중국을 향한 “손가락질(finger-pointing)”을 멈추라 촉구했다. 그들은 또한 “바이러스의 정확한 진원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며 “중국은 바이러스의 피해국”이라고 주장했다. 동시에 중국은 세계에 모범이 되는 방역 성공 국가라며 중공 정부를 칭송했다.
민간의 학자들이 공동성명을 통해 미국을 비판하는 애국투쟁을 전개하자 중공정부는 더더욱 고무된 듯하다. 지난 5월 28일 중국 전인대(全人大)는 과감하게 국제사회의 비판에 아랑곳없이 99.7%의 찬성으로 대(戴) 홍콩 국가안전법을 승인했다. 미국이 위기에 내몰리자 중국은 체제전쟁의 선수(先手)를 친 듯하다. 방역대국 중국의 체제적 우월성을 과시하고 싶은 걸까? 그보다는 오히려 내부의 결속을 다지려는 전술 같다.
<바르셀로나에서 활약하는 브에노스 아이레스 출신 예술가 막소마틱(Max-o-matic, Maximo Tuja, 1975 - )의 콜라주(collage) 작품. https://maxomatic.net
◇검역 대가로 신상정보 통제, 디지털 독재 착착 진행
무릇 독재는 내우외환의 위기를 먹고 자란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중공정부가 추진해 온 디지털 전체주의를 확립하는 절호의 기회가 되고 있다. 중공정부는 이미 2020년부터 개개인의 모든 정보를 통합·관리하는 사회신용시스템을 실시할 것이라 예고해왔다. 공교롭게도 전국적 시행을 코앞에 두고서 역병이 발생했다. 음모론을 부추길 필요는 없다. 역병이 아니라도 도입될 중공정부의 디지털 독재는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바로 지금 중국 대부분의 도시에선 핸드폰이 없으면 아무데도 갈 수가 없다. 어디를 가든 검역원들이 체온계를 들이댄다. 체온검사 후엔 모든 사람이 휴대폰을 내밀어야 한다. 모든 휴대폰엔 의무규정으로 신원확인 앱(APP)이 깔려 있다. 휴대폰을 열고 QR코드를 스캔해야만 건물마다 설치된 검역라인을 통과할 수 있다. 개개인의 동선은 “빅브라더”의 관제탑에 실시간 보고된다. 인민은 자발적으로 휴대폰의 QR코드를 내민다.
<윈난성 쿤밍시에서 체온을 재고 QR코드를 스캔하는 사람들, 2020년 2월 경> https://www.nytimes.com/2020/03/01/business
위기를 틈타 국가권력은 인민의 사생활에 침투한다. 그 모습이 숙주의 세포에 결착되는 바이러스를 닮았다. 인민은 사생활의 큰 부분을 포기하지만, 검역(檢疫)의 혜택을 누릴 수는 있다. 이제 중공정부는 오웰적(Orwellian) 사회통제의 시스템을 완성해 가고 있다.
홉스의 통찰대로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인데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빅브라더의 통제를 수용한다. 검역의 대가로 중공정부는 개개인의 신상정보를 고스란히 앗아간다. 실시간 휴대폰을 털리는 개개인은 정부에 모든 약점을 노출하고 만다. 순종하면 무사하지만, 저항하면 약점이 까발려진다. 바야흐로 QR코드 전체주의의 시대가 도래했다!
◇“우한일기 작가 팡팡은 매국노”…새 문혁의 전조?
건국 초 한국전쟁의 발발은 마오쩌둥에게 내부의 반대세력을 제거하는 절호의 기회였다. 이후 중·소 분쟁은 문화혁명의 좋은 토양이 되었다. 미국과의 체제전쟁도 예외일 수 없다. 외부의 적국이 설정되면, 인민은 적인(敵人)과의 투쟁을 강요받는다. 표면상 친정부세력과 반정부세력의 투쟁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관민이 결합되어 일사분란하게 반대세력을 숙청하는 정치 캠페인이다.
2020년 1월 25일 우한의 유명작가 팡팡(方方, 1955- )은 블로그에 ‘우한일기’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작가는 대부분 인터넷에 글을 쓸 때 스스로 작품을 “검열”한다. 팡팡은 그러나 날마다 수백만의 평범한 우한의 시민들이 겪은 격리의 공포를 깨알같이 기록했다. 봉쇄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국가기관의 일상적 폭력도 핍진하게 묘사했다. 팡팡의 일기가 큰 반향을 일으키자 정부는 블로그를 폐쇄했다. 현재 영역 중인 ‘우한일기’는 2020년 8월 18일 미국에서 출판 예정인데······.
<팡팡의 '우한일기' 영역본 및 작가 팡팡(1955- ), 2020년 8월 미국에서 출간 예정> https://thetyee.ca/Culture/2020/05/27/Wuhan-Diary-Book
상당수 중국 지식인들은 팡팡의 작품이 미국에서 출판되는 상황이 영 마뜩치 않다. 후난(湖南)대학 웨루(岳麓)서원의 라이상칭(賴尙淸, 1976 - )교수는 4월 10일 한 문예지에 팡팡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칼럼을 기고했다.
“서방인의 시각에서 중국사회 및 정부를 비판하는데 이러한 비판은 완전히 객관적인가? 현재 서방 정부의 방역 통제는 실수투성이며, 심지어 실패했다 할 수도 있다. 서방이 팡팡의 일기를 이용해서 역병 통제의 실패와 정부책임을 회피하려 한다는 혐의를 피하기 어렵다. 곳곳에서 팡팡을 옹호하는 인사들은 말한다. 루쉰도 ‘광인일기’를 쓰지 않았는가? 그들의 이러한 비판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 왜냐면 루쉰의 ‘광인일기’는 어떻게 읽든 결국 허구의 문학작품이지만, ‘우한일기’를 읽는 독자들은 어떻게 읽든 모두 저명한 작가 팡팡이 우한에서 직접 기록한 진실의 문헌이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칼럼의 결론에서 라이교수는 묘한 말을 남긴다.
“한 개인은 시대의 한 톨 작은 먼지인가, 아니면 큰 산인가? 이는 그가 보편적 공공이익을 통찰할 수 있는지, 또 그 길을 따라 곧바로 나아갈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만약 그렇게 할 수 없다면, 그 사람의 이름이 천하를 덮을수록 더더욱 그 사람은 발을 헛딛고 나락으로 추락하게 될 터이다.”
작가의 심장을 겨눈 날카로운 비수가 아닐 수 없다. 라이교수의 비판을 분석하자면, 1) 팡팡은 공공이익을 통찰하지 못했으며, 2) 매명의 욕구에 사로잡혀 3) 중국의 현실을 의도적으로 왜곡했고, 4) 그 결과 서방세력에 이용당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팡팡은 이미 매국노의 오명을 썼다. 서방에서 ‘우한일기’가 주목받고 팔릴수록 중국에서 팡팡은 고립될 수밖에 없다. 섬뜩한 정치투쟁의 화약내음이 난다. 과민방응일까? “10년의 대동란(大動亂)” 문화혁명(1966-1976)은 ‘해서파관(海瑞罷官)’이라는 한 편 희곡에 대한 한 평론가의 비판에서 시작되었다. “나락으로 추락하게 될 터”란 라이교수의 문장을 접할 때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까닭이다.
※필자 송재윤(51)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는 고려대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에서 중국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국의 건국 전후부터 1960년대까지 근대사를 서술한 ‘슬픈 중국: 인민민주독재 1948-1964’(까치)를 최근 출간했다. 중국 근현대사 저작을 3부작으로 구상 중이며 이번에 연재하는 ‘문화혁명 이야기’는 2권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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