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윤의 슬픈 중국: 문화혁명 이야기 <19>
혁명의 시대엔 불의(不意)의 공습(空襲)처럼 무차별 말[言語]의 폭탄이 떨어진다. 그 폭탄을 맞으면 누구도 무사할 수 없다. 가벼운 찰과상도 깊은 트라우마를 남긴다. 제대로 맞으면 사망에 이른다. 1978년 12월 중공중앙의 발표에 의하면 문혁 “10년의 대동란” 과정에서 무려 1억 1300만 명이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정치적 타격의 양상은 복잡다단하지만, 피해자는 모두 공통적으로 언어의 폭격을 맞았다. 2020년 오늘도 “말의 폭탄”은 날마다 터진다.
언어중추의 발전은 호모사피엔스의 진화적 특징이다. 호모사피엔스는 본질적으로 호모로퀜스(homo loquens, 언어적 인간)이다. 인간은 언어로 세상을 인식하고, 언어로 소통하고, 언어를 통해서 세상을 바꾼다. 언어는 인류문명의 핵심이지만, 치명적 한계이기도 하다. “산(山)”의 실체는 “산”의 이름보다 한없이 크다. 산을 산이라 부르는 순간, 산을 안다 여긴다면 심대한 착각이다. 선방(禪房)의 경구처럼 “산은 산이지만, 산은 또 산이 아니다.” 일찍이 언어의 속임수에 빠진 어리석은 자들을 향해 노자(老子)가 말했다. “지자(知者)는 불언(不言)하고, 언자(言者)는 부지(不知)하다.”
<문혁 당시의 전형적인 비투(批鬪) 장면. 투쟁 대상의 목에 ‘이름’을 붙이고 적대적 투쟁을 이어가는 혁명 군중
◇ 정치투쟁은 ‘마타도어’… 상대를 악으로 모는 수법
혁명의 시대엔 언어적 착오(錯誤)가 인간세(人間世)를 지배한다. 정치투쟁의 기본은 마타도어(matador)다. 반대자에 "나쁜 이름"을 들씌워 악인으로 몰아가는 야비한 수법이지만, 인간은 실체와 이름을 쉽게 혼동하기에 정치꾼들은 그 틈을 파고 든다. 누군가 제 아무리 위대한 성취를 이뤘다 해도 흔해빠진 정치적 낙인만으로 그 개인의 인격을 파괴하고 정치적 살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의 굴곡을 거쳐 온 인간 개개인의 정체가 고작 반혁명분자, 수정주의자 따위 단순한 오명(汚名)으로 환원될 수 있을까? "반혁명분자"라는 주어엔 이미 "자산계급 대변자," "국민당 잔당," "제국주의 부역자" 등등의 술어가 줄줄이 내포돼 있다. 누군가 반혁명분자의 낙인을 받으면 항변의 기회도 없이 "제거돼야만 하는" "인민의 적"이 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문혁시절 어린 홍위병들은 사방에서 잡아 온 "반혁명분자들"을 무릎 꿇리고 팔을 뒤로 꺾어 제압한 후, 얼굴에 침을 뱉으며 독침 같은 말의 폭탄을 쏟아냈다. 反당, 反사회주의, 反마오쩌둥사상, 反마오주석, 자산계급 대변자, 제국주의 주구 등등. 그 단어 하나하나가 그들의 과격한 행동을 정당화했다. 요컨대 문화혁명의 폭력성은 언어의 속임수에서 발생했다. 혁명의 말장난에 전 인민이 속수무책으로 놀아났던 셈이다.
<문혁 당시 사형에 처해지는 “반혁명 집단 주범”들의 모습. X자 쳐진 이름자 밑에 “사형에 처한다. 즉시 집행!”라는 구호가 적혀 있다.
◇ 언어의 속임수에 속수무책으로 놀아난 인민들
문혁 초기의 일례를 살펴보자. 1966년 6월 15일 난징의 신화사(新華社)는 난징(南京)대학에서 발생한 한 사건을 보도한다. 다음 날 베이징의 인민일보에 게재되면서 전국에 알려진 기사다. 베이징대학에서 불기 시작한 문화혁명의 광풍이 전국 전역에 몰아치던 시점이었다. 1966년 6월 1일 중공 인민방송국에서 베이징 대학의 7인이 작성한 최초의 대자보에 대해 보도한 직후, 6월 2일 오후 난징대학엔 베이징대학에 호응하는 대자보가 붙었는데….
베이징 대학과 마찬가지로 난징대학의 혁명사생(革命師生, 교수와 학생)들은 "반당반사회주의의 반혁명분자" 쾅야밍(匡亞明, 1906-1996)의 "반동적 죄행"을 적발하고 단죄했다. 쾅야민은 난징대학 당위원회 제1서기이자 총장이었는데, "야비(野卑)하고 비루(鄙陋)하고 독랄(毒辣)한 음모적 수단으로 교내 혁명군중의 운동을 진압하고 반당·반사회주의의 반혁명노선으로 나아갔다"는 혐의를 썼다. 대자보는 또 쾅야밍이 문화혁명을 배반했다고 집중 공격했는데, 그 근거는 난징대학 출판부에서 출간했던 1930년대 좌파문학 관련 서적이었다.
<총장 쾅야밍을 공격하는 난징대학의 대자보
쾅야민이 그 책에서 "학술대토론에의 참여"를 독려하면서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원칙을 강조"했다는 이유였다. 1965년 12월 베이징 시장 펑전은 "학술토론"과 "실사구시"를 근거로 역사학자 우한을 변호했었다. 난징대학의 혁명사생들은 바로 그 점을 적시하여 쾅야민 총장을 베이징의 반혁명세력과 연계된 "철두철미한 수정주의자"로 몰고 갔다. 게다가 그가 "무의식"과 "객관성" 등 서구 자산계급의 철학 개념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그를 "반당·반사회주의 흑색노선의 옹호자"라 비난했다. 쾅야민은 또 "자산계급의 대표적 존엄"이자 "자산계급 보황파(保皇派)의 얼굴"이란 오명도 써야 했다. 그가 혁명사생에 "모멸, 저주, 협박을 가하면서" "광적인 반혁명활동을 전개했다"는 인신공격도 이어졌다.
쾅야민이 맞았던 말의 화살을 열거해 보면…. 반당분자, 반사회주의분자, 반동분자, 반혁명분자, 흑방, 흑선(흑색노선) 수정주의자, 자산계급의 대표, 보황파의 얼굴, 우귀사신(牛鬼蛇神, 소머리 뱀 몸뚱이의 귀신) 등등이 있다. 그 단어 하나하나가 모두 독전(毒箭)이었지만, 그때까진 그래도 "말의 화살"일 뿐이었다. 문혁 최초의 본격적인 폭력투쟁은 불과 이틀 후 베이징 대학에서 일어났다.
◇ 언어폭력에서 신체폭력으로…성범죄도 저질러 1968년 6월 18일 베이징 대학에서 최초의 폭력적 혁명투쟁이 일어났다. 당시 베이징 대학에 파견된 공작조는 신속히 "난투 상황"을 수습한 후, 현장의 상황을 알리는 보고서를 작성해서 중공중앙에 올린다. 이 보고에 따르면, 6월 18일 오전 9시에서 11시 공작조가 전체회의를 하는 사이 베이징 대학 교정에선 화학과, 생물학과 등의 여러 단위에서 "난투(亂鬪)의 현상"이 벌어졌다. 대략 40-60여 명에 대한 폭력적인 비투(批鬪, 비판투쟁)가 발생했다. 과격분자들은 교내에 흑방(黑幇)분자들을 처벌하는 투귀대(鬪鬼臺)와 참요대(斬妖臺) 등을 설치한 후, 교내 주요 책임자들, 당 간부들, 교수들, 반동학생들에 대한 비투(批鬪, 비판투쟁)를 거행했다. 면상에 흑칠하기, 긴 모자 씌우기, 무릎 꿇리기, 옷 찢기, 주먹으로 때리기, 발로 차기, 유가(遊街, 가두행진), 유투(遊鬪, 가두 비투) 등등의 폭력행위가 자행되었다. 가해자 중에는 깡패, 부랑아도 있었고, 신원을 속이고 혁명대오에 잠입한 국민당원과 베이징대학 부속 고교 퇴학생도 섞여 있었다. 베이징 대학 학생들 중에도 영웅심에 빠져 폭력을 휘두른 극렬분자도 있었다. 그들은 투쟁 대상에 대한 폭력뿐만 아니라 여성들의 "가슴을 주무르고, 엉덩이를 때리고, 음부를 만지는 등" 성범죄도 저질렀다.
<문혁 시기, 베이징대학 부속 고교에서 학생들이 교장을 비투하는 모습
공작조는 바로 현장에 달려가 이들의 “난타난투”를 중단시킨 후, “진정한 좌파의 혁명 행동”을 촉구했다. “무산계급 혁명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앞으로의 투쟁은 공작조의 비준을 받아야 하며, 소수 극렬분자에 의한 난동(亂動)은 반혁명으로 간주한다는 엄격한 규정을 제시했다.
규율과 질서를 지키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문화혁명이 과연 가능할까? 중공중앙의 당권파들은 비폭력의 합법적 계급투쟁을 강조했다. 특히 류샤오치는 6.18 사건에 관한 베이징 대학 공작조의 보고서를 "간보(簡報)" 형식으로 전국에 배포했다. 극렬분자의 과격행위를 제어하기 위한 선제조치였다. 물론 마오는 류샤오치의 조치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미 40년 전 출세작 "후난 농민운동 고찰보고"에서 마오는 말한 바 있었다. "혁명은 폭동이다(革命是暴動)!"
<문혁 당시의 포스터. “무산계급 혁명 조반파는 연합하라!” “혁명 조반정신 만세!”
※ 필자 송재윤(51)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는 최근 ‘슬픈 중국: 인민민주독재 1948-1964’(까치)를 출간했다. 중국 최현대사를 다룬 3부작 “슬픈 중국” 시리즈의 제 1권이다. 이번에 연재하는 ‘문화혁명 이야기’는 2권에 해당한다. 송 교수는 학술 서적 외에 국적과 개인의 정체성을 다룬 영문소설 “Yoshiko’s Flags” (Quattro Books, 2018)의 저자이기도 하다. ☞ <18회> “마오쩌둥이 무너지면 중국 공산당이 무너진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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