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윤의 슬픈 중국: 문화혁명 이야기 <21회>
권력자의 독단(獨斷, dogma)은 나라를 망친다. 지도자의 독선(獨善)은 사회를 해친다. 독단은 오도된 자기 확신에서 나온다. 독선은 정신병적 유아론(唯我主義, solipsism)의 발로다. 경험이 짧고 견문이 좁은 인간은 독단의 우물 속에 머무른다. 사상의 다양성, 가치의 다원성을 인정하지 않는 자는 독선의 늪에 빠져든다. 범부의 독단, 필부의 독선도 위험하기 그지없다. 하물며 수억 인구의 비대한 대륙국가 최상권력자의 독단, 최고영도자의 독선임에랴.
파멸을 부른 최고 영도자의 독단
1949년부터 1976년까지 27년 동안 마오쩌둥의 절대주의 통치 아래서 수천만이 희생되고 1억 1천만 명 이상이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인류사 최장(最長)의 문명을 창건하고 확산해 온 중화대륙에 왜 그토록 처참한 재앙이 발생했나? 절대 권력자의 독단, 최고 영도자의 독선 때문이었다.
마르크스는 19세기 중엽 스스로 “역사의 합법칙성”을 밝혀냈다고 확신했던 독단론자였다. 그가 제창한 “과학적 사회주의”는 소외된 “무산계급”에 유토피아의 희망을 주었지만, 돌이켜 보면 공산주의는 “인민의 아편”일 뿐이었다. 20세기 모든 사회주의 정권은 관료행정의 부패와 빈곤의 트랩에 빠져 처참하게 실패했다. 20세기 공산전체주의 정권에서 희생된 사람들은 1억 명을 초과한다. 공산정권의 실패는 마르크스의 이념적 독단에 기인한다.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쩌둥 사상 만세!” chineseposters.net>
“인류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라는 마르크스-엥겔스의 유물사관은 젊은 마오쩌둥의 뇌리에 무서운 독단의 씨앗을 뿌렸다. 과도한 집산화로 최대 4500만이 아사하는 대기근을 초래한 후에도 마오쩌둥은 “자나 깨나 계급투쟁”을 외치며 전 중국을 혁명의 광열 속에 몰아넣었다.
1978년 이후 덩샤오핑은 개혁개방의 기치를 높이 들고 만신창이 중국인민을 다독이며 말했다. 바닥이 미끄러운 “돌을 발로 살살 밟으며 강을 건너자!(摸着石頭過河)”고. 중국이 오랜 독단의 잠에서 깨어나 현실에 눈을 뜨는 순간이었다. 계급투쟁 대신 “실사구시(實事求是)”가 새 시대의 모토가 되었다. 그 간단한 실용의 지혜를 얻기 위해 전 중국이 실로 비싼 수업료를 지불해야만 했다.
<상하이 양푸(楊浦)구 수앙양(雙陽)로에 흐릿하게 남아 있는 1950년대의 벽화 http://www.globaltimes.cn/content/979982.shtml>
문화혁명의 국제적 배경: 마오쩌둥 사상의 수출
마오쩌둥은 마르크스, 레닌, 스탈린을 이어 사회주의 혁명의 구루(guru)가 되려 했다. 1966년 8월 초 중국공산당은 “마오쩌둥 저작선”을 대량으로 출판·유통하기로 결정한다. ‘마오쩌둥 사상’을 널리 보급하고 확산하기 위함이었다. 마오쩌둥 사상은 마오쩌둥이 스스로 고안하고 제창한 정치, 군사, 경제이론의 체계를 이르는데, 중공정부는 ‘마오쩌둥 사상’이라는 공산주의 신상품을 전 세계 사회주의권에 수출하려 했다. 그 배경에는 반미(反美)제국주의와 반소(反蘇)수정주의가 깔려 있었다.
문화혁명이 시작되던 1966년 여름 베트남 전쟁이 본격화됐다. 그해 5월 세 명의 승려가 반미의 구호를 외치며 분신한다. 5월 말 미군사상자가 최고조에 달하자 미국의 존슨대통령이 전면전을 선포하고, 6월 말 미 공군은 최초로 북베트남의 주요도시를 공습해 정유시설을 파괴한다. 한편 소련은 1964년 10월 흐루쇼프 실각 이후 알렉세이 코시긴(Alexei Kosygin, 1904-1980)의 지도 아래 이윤동기와 상품판매를 골자로 하는 탈(脫)스탈린 수정주의 경제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마오쩌둥은 미국의 “제국주의적 만행”을 규탄하면서 동시에 소련의 수정주의노선을 비판했다. 언론은 날마다 베트남 전쟁의 실황을 상세히 보도하면서 미제(美帝)를 규탄하기에 여념 없던 시절이었다. 중공중앙은 또한 사회주의의 정도를 이탈한 소련공산당을 향한 비판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었다. 예컨대 1966년 6월 20일 베이징에서 개최된 아시아·아프리카 작가회의의 공동성명엔 “소련수정주의자들은 세계혁명의 반역도당”이란 선언이 담길 정도였다.
문화혁명의 밑바탕엔 중국만이 세계혁명을 주도할 수 있으며, “마오쩌둥 사상이 세계혁명의 지도이념”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었다. 이제 와서 돌아보면, 자국중심의 몽환적인 현실인식과 일인숭배의 종교적 광열이지만, 문혁 초기 전국에서 일어난 홍위병들은 진지하고도 심각하게 “마오쩌둥 사상”을 흡입했다.
“마오쩌둥 사상을 보위하라!”
국방장관 린뱌오(林彪, 1907-1971)는 1966년 3월 11일 “공업·교통의 전선에서 마오주석의 저작을 공부하고 활용하자”는 제목의 문장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우리나라는 위대한 무산계급 독재의 사회주의 국가다. 7억의 인구가 있으니 반드시 통일의 사상, 혁명의 사상, 올바른 사상이 필요한데, 바로 마오쩌둥 사상이 그것이다. 이 사상이 있기에 왕성한 혁명의 에너지를 견지할 수 있으며, 올바른 정치의 방향을 확정할 수 있다. ······ 마오쩌둥 사상은 노동인민이 자발적으로 생산한 것이 아니라 마오주석이 직접 위대한 혁명 실천의 기초 위에서 천재적으로 마르크스-레닌주의 사상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고, 또 국제 공산주의운동의 새로운 경험을 종합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첨단의 새로운 단계로 제고한 것이다.”
<“마오쩌둥 사상의 태양빛이 무산계급 문화대혁명의 도로를 비추네!” 1966년 8월, “상하이 인민미술 출판사 선전 화가 조직” 작품. chineseposters.net>
린뱌오는 문혁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인민해방군에서 마오쩌둥 인격숭배를 주도했던 인물이다. 당시 중국은 원자폭탄과 수소폭탄까지 자체 개발해서 100년의 국치를 씻고 소련에 필적하는 군사대국으로 발돋움한 직후였다. 린뱌오는 이제 중국이 “마오쩌둥 사상”이라는 최첨단의 혁명이념을 통해 세계혁명의 주도국이 돼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마오쩌둥 사상은 중국이 소련을 제치고 세계혁명의 지도국가로 성장하기 위한 필수불가분의 정신적 무기였다. 위의 글에서 린뱌오가 마오쩌둥 사상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넘어 사회주의 세계혁명의 새로운 단계라 선전하고 있는 까닭이다.
<1966년 여름, “마오주석 어록”을 손에 들고 행진하고 있는 어린 홍위병의 모습/ 공공부문>
곧 이어 어린 학생들이 “마오쩌둥 사상을 학습하라!”는 린뱌오의 당부를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1966년 5월 29일 청화대학 부속중학(중고교)에서 최초의 홍위병이 결성되었다. 그날 교내에 몇 명의 학생들이 모여 “마오쩌둥 사상의 절대권위를 특별히 사수해야 한다!”고 선언했는데, 그들의 움직임은 곧 홍위병 조직의 전국적 발흥으로 이어졌다.
6월 초, 베이징지질학원(=대학) 부속 중고교, 베이징석유학원 부속중고교, 북경 대학 부속중고교, 베이징광업학원 부속중고교 및 베이징 제25중고교의 학생들이 연이어 홍위병, 홍기(紅旗), 동풍(東風) 등의 비밀결사를 결성했다. 이들의 선언문엔 다음 구절이 포함돼 있다.
“우리는 홍색 정권을 보위하는 위병(衛兵)들이다. 중공중앙과 마오주석은 우리들의 큰 산이다. 전 인류의 해방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우리의 책임이다. 마오쩌둥 사상은 우리들의 모든 행동의 최고 지침이다. 우리는 선언한다. 중공중앙을 보위하고, 위대한 영도자 마오주석을 보위하기 위해 우리는 견결하게 마지막 한 방울의 피까지 다 흘릴 것이다.”
마오쩌둥 사상은 7억 인구를 하나로 묶는 “통일의 사상, 혁명의 사상, 올바른 사상”이었나? 1966년 6월 21일 인민일보 제1면 오른쪽 상단 “마오쩌둥 어록” 박스엔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올바른 정치 관념이 없다면, 영혼이 없는 것과 같다!” 여기서 올바른 정치 관념이란 물론 마오쩌둥 사상을 이른다. 최상 권력자의 독단, 최고 영도자의 독선이 어린 학생들의 뇌수를 파고드는 과정은 그러했다. 절대 권력자의 독단, 최고 영도자의 독선은 이제 7억 중국인의 의식을 지배하는 유일사상이 되었다. <계속>
<1966년 6월 15일자 인민일보 1면 상단. 우측 박스에는 마오주석의 어록 중 한 구절이 발췌돼 있다. “올바른 정치 관념이 없다면 영혼이 없는 것과 같다!”>
※ 필자 송재윤(51)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는 최근 ‘슬픈 중국: 인민민주독재 1948-1964’(까치)를 출간했다. 중국 최현대사를 다룬 3부작 “슬픈 중국” 시리즈의 제 1권이다. 이번에 연재하는 ‘문화혁명 이야기’는 2권에 해당한다. 송 교수는 학술 서적 외에 국적과 개인의 정체성을 다룬 영문소설 “Yoshiko’s Flags” (Quattro Books, 2018)의 저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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