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정연주씨가 방심위의 長이 돼선 안 되는 이유
정연주 전 KBS사장./조선일보 DB
청와대가 야당 측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연주(75)씨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위원장으로 기어이 밀어붙이려는 모양이다. 청와대는 야당이 야당 몫 방심위원 3명의 추천을 계속 거부할 경우 여권 추천 위원 6명만으로 방심위를 구성하고 이들의 호선으로 방심위원장을 선출할 계획이라고 한다.
필자는 정연주씨가 방심위의 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는 KBS 사장으로 노골적인 정치적 편향성을 드러냈다. 또한 두 아들의 병역면제로 대표되는 내로남불 문제도 있다. 이 모두가 심각한 결격 사유다. 하지만 필자가 그의 등장을 반대하는 더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방심위는 미디어 내용에 대한 최후의 심판자에 해당하는 기관이다. 방심위에서 규제 수위에 대한 의사결정은 규정에 의해 기계적으로 재단되지 않고 위원들의 토론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러한 토론의 중심에서 상이한 의견의 조정, 위원 상호 간 이해 및 신뢰의 형성, 이에 기초한 합의를 이끄는 것이 위원장의 역할이다. 필자는 정연주씨가 이러한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기본 자질을 결여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그는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쉽게 말을 바꾸고 합의를 저버릴 수 있는 능수능란한 전략적 승부사 유형의 인물이다.
그는 2002년 대선 당시 진보 성향 언론사의 논설위원으로 “현역 3년 다 때우면 어둠의 자식들이고 면제자는 신(神)의 아들”이라는 칼럼으로 이회창 후보 아들 병역 문제를 공격했다. 노무현 정권이 출범하면서 사임한 박권상 KBS 사장의 후임으로 노무현 후보의 언론고문을 지낸 서동구씨가 임명되었다가 낙하산 논란으로 물러나자 그 뒤를 이은 게 정연주씨다. 굴러들어온 돌이었던 그는 첫 임기 3년 동안 지속적으로 KBS 내부 성원들과 갈등을 겪었다. 하지만 거기까진 그러려니 싶은 일이었다. 문제는 그가 KBS 내부의 극심한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합의를 깨면서까지 사장 연임을 달성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정연주씨의 임기는 2006년 6월 30일까지였다. 하지만 그는 정관을 따른다며 임기가 끝난 이후에도 사장직을 유지한 채 연임을 추진했다. 사장 임명제청권을 지닌 이사회 이사 11명 중 8명이 여당 측 인사들이라, 요식적인 이사회만 거치면 연임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이에 맞서 KBS 노조는 ‘사장후보추천위원회(사추위)’ 도입을 요청했다. 최소한의 공정성과 투명성 확보 차원에서 사추위가 사장 공모 응모자들을 심사해서 후보를 압축하고 이사회가 그중 한 명을 사장 후보로 선정하라는 것이었다. 이사회는 KBS 노조가 총파업에 돌입하기 직전 사추위안을 받아들였다.
사추위의 운영은 파행 그 자체였다. 우선 추천 후보 수를 3인으로 할지 5인으로 할지를 둘러싸고 극심한 갈등을 겪었다. 결국 정연주씨에게 유리한 5인 안을 수용하는 대신 7인의 사추위원(여당 이사 3, 야당 이사 1, 외부 3인) 중 외부 인사 3인에 대한 추천권을 노조가 갖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 결과 사추위에서 정연주씨의 연임을 확실하게 밀어줄 위원이 3명이고 나머지 4명은 불확실한 상황이 발생했다. 결국 정연주씨를 미는 이사회는 합의의 산물인 사추위를 무산시키고 2006년 11월 9일 그를 KBS 사장으로 임명 제청했다.
그가 KBS 사장에 재임명되고 첫 출근을 하던 날, KBS 출입문에는 차기 노조를 이끌 노조위원장 후보들 모두가 반(反)정연주 플래카드를 들고 섰다. KBS 직원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2%가 정연주 사장의 연임을 반대한다고 답했다. 정연주씨는 KBS 출입문을 두고 주차장 출구로 역주행 출근했다.
이명박 정부는 감사원과 새로 구성된 KBS 이사회를 동원해 2008년 8월 11일 정연주씨를 사장직에서 해임했다. 하지만 그를 보수 정부에 의해 축출된 공영방송의 수호자 내지 언론 탄압의 희생양으로 간주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그는 권력의 낙하산으로 KBS 사장이 되었고 적자 경영과 편향적 편성으로 지속적인 갈등을 야기했다. 사내 성원을 대표하는 노조와의 합의를 무시한 채 들러리 이사회를 동원한 반민주적 방식으로 연임을 달성했다가 정권이 바뀐 후 동일한 방식으로 축출되었다.
국민 여론을 도외시한 청와대의 정연주씨 방심위 위원장 임명 강행은 2006년 가을 KBS 사장 인선 과정의 파행을 연상시킨다. 신뢰와 합의를 도외시하는 그가 수장이 되는 즉시, 힘겹게 조직의 위상을 지켜온 방심위는 무너질 것이다. 자신을 위해서건 이 사회를 위해서건 정연주씨는 노병(老兵)처럼 조용히 사라지는 게 옳다.
'column'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설] 전력 공급 위기에 처하자 원전에 손 내민 탈원전 정부 (0) | 2021.07.21 |
---|---|
[기자의 시각] 김의겸 의원의 ‘가짜 뉴스’ (0) | 2021.07.21 |
[만물상] 작전명 ‘오아시스’ (0) | 2021.07.21 |
[고현곤 칼럼] 비전은 없고 정치공학만 남았다[출처: 중앙일보] (0) | 2021.07.20 |
[오병상의 코멘터리] 소마 공사의 망언..일본의 속마음이다[출처: 중앙일보] (0) | 2021.07.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