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列傳 故事(56)竊符求趙[절부구조]
❏《사기》 〈위공자열전(魏公子列傳)〉
竊 : 훔칠 절 符 : 병부 부 求 : 구할 구 趙 : 조나라 조
❏풀이: 병부를 훔쳐 조나라를 구하다.
훔친 병부로 조나라를 구했다는 뜻으로, 보다 큰 목적을 위해서는 사소한 의리 같은 것은 버려도 된다는 말로 쓰인다.
❏구조: 竊∣符 求∣趙(술어+목적어 구조로 이루어짐)
•竊∣符(절부): 병부를 훔치다.
-竊(훔칠 절) 남의 물건을 남몰래 슬쩍 가져다가 자기 것으로 하다(동사술어)
-符(부호 부) 부절(符節) 돌이나 대나무·옥 따위로 만들어 신표로 삼던 물건이다. 여기서는 군대를 동원할 때 쓰던 부신(符信)으로 발병부(發兵符)의 준말이다(목적어)
•求∣趙(구조)조나라를 구하다.
-求(구할 구) 위태롭거나 어려운 지경에서 벗어나게 하다. (동사술어)
-趙(조나라 조) 조나라(趙, 기원전 403 ~ 기원전 228)는 중국 전국 시대 주나라의 제후국이다.(목적어)
※중국역사적 조나라
①조(曹, 기원전 1046 ~ 기원전 487)는 중국 춘추 시대 주나라의 제후국이다.
②조(趙, 기원전 403 ~ 기원전 228)는 중국 전국 시대 주나라의 제후국이다.
③조(趙, 기원전 203 ~ 기원후 9)는 중국 전한의 제후왕국이다.
④전조(前趙, 304 ~ 329)는 중국 오호 십육국 시대 유연이 건국한 왕조이다.
⑤후조(後趙, 319 ~ 351)는 중국 오호 십육국 시대 석륵이 건국한 왕조이다
❏유래:
전국시대 사군(四君)의 하나였던 위(魏)나라 공자 신릉군(信陵君)의 이름은 무기(無忌)이다. 위(魏) 소왕의 막내 아들로 안희왕의 배다른 동생이었다.
신릉군은 덕과 지혜를 겸비하였으며, 또 인자하고 겸손하며 예의가 발랐다. 이런 까닭으로 선비들이 사방 수천리에서 앞을 다투어 모여들어 식객이 3천명이나 되었다.
그러나 신릉군은 이 중에도 동문(東門)을 지키는 후영이란 문지기를 스승처럼 위했고, 백정 주해(朱亥)를 귀인처럼 받들었다. 안희왕 20년, 조(趙)군(軍)을 장평에서 물리친 진(秦)의 소왕은 계속 진격하여 조나라의 수도 한단을 포위했다.
조(趙)나라의 혜문왕과 평원군(平原君)은 여러 차례 위(魏)의 안희왕과 신릉군에게 편지를 보내 구원을 청했다. 안희왕이 장군 진비를 시켜 10만의 군사를 이끌고 조나라를 돕게 하자, 진(秦)의 소왕이 사자를 보내어 이렇게 말하였다. “만약 제후들 중에 누구든 조(趙)나라를 돕는 나라가 있으면, 조(趙)나라를 격파한 후 반드시 군사를 돌려 그 나라를 공격하겠다.”
이 말을 들은 안희왕은 진비의 진격을 멈추게 하였다. 할 수 없이 신릉군은 후영의 조언을 받아 왕이 총애하는 여희(如姬)를 통해 병부(兵符)를 훔치고, 이 훔친 병부로 진비의 군대를 가로채려 한다. 그러나 훔친 병부를 진비가 인정하지 않자 주해가 이를 격살한다.
이렇게 하여 군대를 손에 넣은 신릉군은 즉시 영을 내려 “부자와 형제가 함께 군중에 있으면 아버지와 형은 즉시 귀국하라. 독자(獨子)로서 형이 없는 자 또한 귀국하여 부모를 봉양하라.”고 하였다. 이렇게 하여 선택된 8만의 군사로 진격하여 조나라를 구하였다.
이 ‘절부구조’는 정도(正道)가 아니라 패도(覇道), 즉 패자의 도이다. 곧 인의(仁義)에 의한 것이 아니라 무력과 권모를 통한 패업의 추구이다. 전국시대에나 가능했던 이야기이다.
어떤 일이 닥쳤을 때 이치에 맞게 따져보고 처리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개인이나 조직의 생사가 걸렸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된다. ‘급하면 임금 망건 사러 가는 돈이라도 쓴다’는 속담이 있다.
나중엔 어찌 되더라도 급할 때는 어떤 돈이든 가리지 않고 써 버린다. 사후에 일이 잘 해결됐을 때 임기응변이 능하다고 되레 칭찬을 들을 수도 있다. 실패했을 때는 비난을 덮어 쓰지만 모든 일이 잘 풀려 성공하면 하나하나 정의를 따지지 않는 법이다.
병부를 훔쳐(竊符) 조나라를 구했다(求趙)는 이 성어는 큰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소한 정이나 의리는 버려도 무방하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兵符(병부)는 發兵符(발병부)의 준말로 군대를 동원하는 패인데 가운데를 쪼개 왕과 지휘 장군이 한 쪽씩 갖는다.
이웃 趙(조)나라가 강국 秦(진)나라의 침입을 받자 위나라에 구조를 요청했다. 조나라 平原君(평원군)은 신릉군의 매부였으니 도움을 주지 않을 수 없었다.
신릉군의 행위는 위나라로 보면 반역이다. 하지만 조나라는 핏줄로 맺어진 이웃이라 수단방법을 안 가리고 구했다. 실제 뒷날 진이 위나라를 침입했을 때, 막은 것도 신릉군의 의리에 의해서였으니 조국을 도운 셈이다. 급할 때는 온갖 방법을 쓴다고 해서 옳지 않은 일을 저지른 뒤 핑계를 갖다 대서는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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