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무렵 서옹스님(왼쪽)과 그의 글씨 '수처작주(隨處作主). /조선일보 DB
열흘 전 폭염 속에 초의차(草衣茶)의 자취를 더듬어 남도 답사를 다녀왔다.
초의 스님이 머리를 깎은 나주 운흥사는 작열하는 태양 아래 인적 하나 없는 적막 속이었다.
다시 초의차의 전통으로 떡차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남은 불회사(佛會寺)로 갔다.
오랜만에 들른 불회사에서 정연(淨然) 큰스님의 소식을 물으니,
덕룡산 꼭대기 일봉암(日封菴)에서 혼자 지내신다는 말씀이었다.
물어물어 찾아가 10년 만에 인사를 나누고 스님이 끓여주시는 불회사 떡차를 마셨다.
벽에 걸린 서옹(西翁) 스님의 글씨 때문에 어느덧 화제가 옮아가,
서옹 스님이 생전에 즐겨 쓰신 ‘수처작주(隨處作主)’를 두고 한동안 대화가 이어졌다.
대구가 되는 바깥 짝은 ‘입처개진(立處皆眞)’이다.
이 두 구절은 임제(臨濟) 선사가 ‘임제록(臨濟錄)’에서 한 설법에 나온다.
“너희가 만약 불법을 얻고자 하거든,
대장부가 되어야만 비로소 얻을 수가 있을 것이다.
만약 나약하게 그때그때의 처지에 따른다면 얻지 못할 것이니,
큰 그릇을 갖춘 사람이 남의 유혹을 받지 않고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어야만,
서있는 곳이 모두 참될 것이니라.”
어디서건 당당한 주인의 삶을 살 때만이 서 있는 곳마다 참되게 된다는 말이니,
외물에 휩쓸리는 일 없이 명명백백하고 정정당당한 삶의 주인이 되라는 가르침이다.
초의도 이 구절을 즐겨 썼다.
‘일미 선생께 올리는 글(上一味先生書)’에서
“만약 사람이 깨닫지 못하면 백년 인생이 한갓 수고롭기만 할 것입니다.
이제 여기에서 이 즐거움을 믿어 깊이 깨달음이 없다면,
다만 마땅히 그 곳에서 이를 깨달아,
마땅히 그 깨달은 바를 날마다 써서 인연이 닿는 곳에 응하여,
능히 곳에 따라 주인이 됨을 얻어,
저절로 서있는 곳마다 모두 참되게 될 것입니다.
(若人不悟, 徒勞百年. 今於此, 無信此樂而深悟, 但當與其所悟之,
於日用應緣處, 能得隨處作主, 自然立處皆眞.)”라고 했다.
깨달음이 없이는 인생은 도로(徒勞)의 연속일 뿐이다.
깨닫는 순간 수처작주하여 입처개진할 수 있게 된다.
나는 내 삶의 주인인가?
내가 딛고 선 자리는 참된가?
8년째 암자를 떠나지 않고 독공 중이신
정연 스님의 맑은 눈빛에 초의차의 향을 품고 산을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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