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22] 여름날의 짚신 삼기와 물레질

bindol 2021. 8. 6. 05:44

[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22] 여름날의 짚신 삼기와 물레질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입력 2021.08.06 03:00

 

김득신 ‘수하일가도(樹下一家圖·18세기 후반~19세기 초반)’, 종이에 담채, 27.5x33.0㎝, 리움미술관 소장.

 

기어 다니는 어린아이를 옆에 두고 근육질 사내는 짚신을 삼으며 아낙은 물레질을 하고 있다. 조선 후기 도화서 화원이었던 김득신(1754∼1822)의 ‘수하일가도(樹下一家圖)’다. 가난한 백성이 삶을 이어가는 현장을 옆에서 보는 듯 생생하다.

온통 상처투성이 고목나무 한 그루가 가지를 펼쳐 뙤약볕을 피할 수 있는 그늘을 만들어 준다.

 

누구나 품 안에 보듬어 줄 것 같은 넉넉함이 화면 가득하다. 나무 잎사귀는 잎자루를 가운데 두고 대여섯 장씩 양쪽으로 달려있다. 전형적 물푸레나무의 특징이다. 이 나무는 마을 사람들에게 보호받아온 당산나무가 아니다. 사립문 밖에서 그냥 팽개쳐진 채 자라다 세월이 흘러 고목이 되어 버린 평범한 나무다. 줄기의 울퉁불퉁하고 굽은 모습은 사내의 근육질 몸과 대비된다. 나무와 사람이 다 같이 질곡의 세월을 함께했음을 그대로 말해준다.

 

썩은 구멍이 곳곳에 생겨 있고, 제대로 자라지 못하여 낮은 높이에서 여러 갈래로 가지가 뻗었다. 나무 아래로는 굵은 뿌리들이 드러났고 주위에는 여기저기 움돋이 싹이 돋아나 자라고 있다. 탈곡이나 도리깨질 등 농작물 수확 과정을 대부분 이 나무 밑에서 한 탓에 땅이 파이고 뿌리가 드러난 것이다. 왼쪽에 여백을 남겨 놓았지만 실제는 작은 개울이 흘렀을 것이다. 물푸레나무는 물가의 수분이 풍부한 양지 바른 곳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사내의 오른쪽에도 오두막 생활 공간이 있을 것 같은 구도다.

 

물푸레나무는 수청목(水靑木)이란 한자 이름대로 어린 가지를 물에 담그면 파란 물이 우러난다. 전체적으로 그림에는 나무 잎사귀와 아낙의 치마, 머릿수건까지 푸른색이 섞여 있다. 혹시 화가가 물푸레나무의 이런 특성을 알고 푸른 물감으로 마무리한 것이 아닐까? 궁금증을 자아낸다. 물푸레나무는 목재 자체도 질기고 잘 휘기 때문에 도리깨 같은 농기구를 만드는 데 흔히 쓰인다. 아마 아낙의 물레도 물푸레나무로 만들었을 것이다.

 

계절은 한여름이다. 사내는 웃통을 벗어던지고 허벅지가 훤히 드러나게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린 채, 보기에도 시원한 차림으로 짚신을 삼고 있다. 아낙은 긴 치마저고리에 머릿수건까지 쓰고 조선 시대 여인들의 표준 복장으로 물레질 중이다. 더위 느낌은 남녀가 마찬가지일 터인데 아낙의 처지가 안쓰럽다.